by 홍상훈
고구려高句麗는 약한 나라인데, 수나라 문제가 공격했다가 승리하지 못했고, 아비를 거스른 양광이 다시 공격했으나 참패를 당했으며, 그 뒤에 당나라 태종(太宗)이 정벌하려다가 병력만 크게 잃고 말았다.
양광이 비록 무도했고, 내호아來護兒와 우문술宇文述이 승리를 장담할 만한 장수는 아니었으나 북으로 강력한 돌궐과 토욕혼吐谷渾을 무너뜨리고 남으로 바다를 건너 유구국流球國을 도륙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온 나라의 역량을 모아 고려를 공격했으니, 그 역시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를 꺾을 듯한 기세였을 것이다.
게다가 당나라 태종은 빼어난 무예를 지닌 채 전성기를 구가하는 천하를 석권하여 제도를 정비하고 군대를 일으켜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끝내 그들 모두 승리하지 못한 것은 수나라와 당나라가 승리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고구려의 수비가 단단했기 때문이다.
수나라가 진나라를 멸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고구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는데, 9년 뒤에 수나라 문제가 정벌하기 시작했고, 22년 뒤에는 또 양광이 정벌했다.
그런데도 고구려가 점령되지 않은 것은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민심을 굳게 결집하고 훌륭한 장수를 선발해 병사를 훈련하면서 군량과 마초를 비축하고 무기를 정비하고 제조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찌 알 수 있는가?
진나라는 고구려와 우방이 아니어서 서로 믿고 지원하여 변경을 단단히 지킬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진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고구려는 이미 9년 전에 두려움을 가졌다.
그러다가 9년 뒤에 전쟁이 발발했는데, 그 효과가 23년 남짓 지난 후에 현저하게 나타나 50년이 넘게 유지되었다.
그 군주와 신하가 시종일관 두려워하는 마음을 풀지 않았으니, 강대국인 수나라와 당나라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주역》 〈비괘否卦[䷋]〉 “구오九五”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망하지나 않을까 늘 염려하면서, 단단한 뽕나무 뿌리에 묶어 놓아야 한다.
其亡其亡, 繫於苞桑.
무엇이 그것을 묶어 놓을 수 있는가?
바로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이다.
나라가 있으면 백성이 있으니 산천과 성곽, 식량, 무기와 병사를 모두 공급받을 수 있다.
연회를 열어 외교적 담판을 지을 책략을 지닌 신하와 적의 전차를 무너뜨릴 수 있는 용사들을 진심으로 모집하여 격려하고 장려하면, 그들이 재능이 없다고 걱정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 왕부지王夫之(1619~1692), 독통감론讀通鑑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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