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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읍내는 북쪽 중앙에 부소산이 있고, 이 산 남쪽 아래에 백제시대 이래 행정 및 문화 중심지인 치소 건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흔적은 발굴로 조선에서 백제까지 확인되고 있다.
지금은 이곳에 19세기에 지은 부여현 객사와 동헌 그리고 내아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다.(이는 1872년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객사 뒤편에 1960년대에 국립부여박물관이 들어섰다.
객사보다 한 단 윗부분인데, 이곳은 1872년에 그린 그림으로 보면 神堂이 위치한 곳이다.
그런데 성리학적 유교사상에 입각한 조선시대 관아터에 왜 신당이 있나해서 찾아 보니,
“조선시대 관아의 조금 외진 곳에는 신당이 종종 있었는데 부군당府君堂이라 불렀고, 부군府君이란 중국 한나라 때 태수의 존칭이고, 부군당은 임지에서 죽은 부군을 모신 사당이라고 한다.
또는 남근을 걸어둔 신당이란 의미로 부근당付根堂으로 부르기도 했다.
남근에서 짐작하듯 부군당에는 여신이 모셔지는 경우가 많았다.”(<한국종교문화연구소> 뉴스레터 688호에 실린 글)
라는 내용을 확인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 현재는 부여군 관내에 위치한 홍산면에는 조선시대 홍산현 관아가 위치한다.
이곳의 발굴에서 남근이 출토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 홍산현을 그린 1872년 그림에는 신당 혹은 부군당이라는 명칭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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