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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김암(金巖)

by taeshik.kim 2018.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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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 생몰년 미상. 김유신의 손자인 김윤중의 서손(庶孫)인데 술법에 밝았다. 젊어서 이찬으로 당에 들어가 숙위하면서 음양술을 배웠고 둔갑술도 터득했다. 대력(大曆) 연간에 신라로 귀국해 사천대박사(司天大博士)가 되었고 양주(良州)·강주(康州)·한주(漢州) 태수(太守)를 역임하고 집사시랑(執事侍郞)을 거쳐 패강진(浿江鎭) 두상(頭上)이 되었다. 혜공왕 15년(779)에는 일본국에 사신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下: 윤중의 서손(庶孫) 암(巖)은 본성이 총민하고 술법 배우기를 좋아하였다. 젊어서 이찬이 되어 당에 들어가 숙위하였을 때, 틈을 타서 스승에게 찾아가서 음양가(陰陽家)의 술법(術法)을 배웠는데, 하나를 들으면 세 가지를 미루어 알았다. 스스로 둔갑입성지법(遁甲立成之法)을 지어 그 스승에게 드리니, 스승이 놀라면서 말하기를 “그대의 밝음이 여기에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하며, 그 후로는 감히 제자로 대우하지 아니하였다. 대력(大曆) 연간에 귀국하여, 사천대박사(司天大博士)가 되었고, 양주(良州)·강주(康州)·한주(漢州) 세 지방[州]의 태수(太守)를 역임하고 다시 집사 시랑(執事侍郞)과 패강진(浿江鎭) 두상(頭上)이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마음을 다해 [백성들을] 보살펴 사랑하며, 농사짓는 세 계절의 여가에 육진병법(六陣兵法)을 가르치니 모두들 유용하게 여겼다. 일찍이 누리가 생겨 서쪽으로부터 패강진 경계로 들어오는데 우글우글 들판을 덮으니, 백성들이 근심하고 두려워하였다. 암이 산마루에 올라가 분향하고 하늘에 기도하니 갑자기 풍우가 크게 일어 누리가 다 죽어 버렸다. 대력(大曆) 14년 기미(혜공왕 15년: 779)에 [암(巖)이] 왕명을 받고 일본국에 사신으로 갔는데, 그 국왕이 그의 현명함을 알고 억류하려 하였으나, 마침 당의 사신 고학림(高鶴林)이 [일본에] 와서 서로 만나보고 매우 즐거워하니, 왜인들은 암이 중국에도 알려진 것을 알고 감히 억류하지 못하자 이에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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