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하대 금석문인 중화 3년명 금동 사리기기(仲和三年銘金銅舍利器記)에 등장하는 표기로 김유신(金庾信)을 말한다. 발음이 같은 '裕神'이라 쓴 까닭은 피휘(避諱) 때문이다. 이 무렵 김유신은 이미 흥무대왕으로 추봉된 까닭에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는 없어, 같은 발음 한자 중에서도 그 신성성을 발휘할 글자만을 골라 '裕神'이라 쓴 것이다.
중화 3년명 금동 사리기기(仲和三年銘金銅舍利器記·883년·신라 헌강왕 9년·당 희종(僖宗) 중화<仲和> 3년) : 무릇 성인의 자취와 행인(行人)의 묘취(妙趣)를 좇아 영탑(靈塔)을 세우는 것은 명왕(明王)이라면 보통 행하는 일이다. 옛날에 유신(裕神) 각간이 세상에 나서 대업(大業)을 이루어 나라의 보배가 되었기에 삼가 이 대석탑을 만들었다. 중화(仲和) 3년(883)에 다시 중수하고자 하여……보문사(普門寺) 현여(玄如) 대덕이 무구정광경에 의거해 작은탑 77기를 만들고 진언(眞言) 77벌을 써서 대탑에 봉안했다. 그리고 집집마다 신묘한 보배를 갖고 사람마다 영명한 구슬을 얻으며 육도(六道)의 중생이 모두 식(識)을 갖고 사생(四生)의 중생이 모두 기운을 품수하여 이 뛰어난 업력(業力)으로 인해 함께 보리를 증득하기를 바란다고 발원(發願)하였다. 중화(仲和) 3년 계묘년 2월일에 중수하다.
夫以追攀聖跡行人妙趣興揚靈塔明王」
通範也 昔有裕神角干成出生之業爲」
▨國之寶敬造此大石塔仲和三年更復」
▨▨將有普門寺玄如大德依无垢淨」
光經造小塔七十七軀寫眞言七十七本安處」
大塔 願言表示家家有妙寶人人得靈」
珠六道含識四生稟氣因此勝業共證菩」
提 仲和三年癸卯二月 日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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