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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조양(冷朝陽) <입춘(立春)>

by taeshik.kim 2018.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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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시 서선 선생 글이다. 


냉조양(冷朝陽)은 윤주 강녕(江寧, 남경시) 사람이다. 769년 진사과에 급제하였으며, 급제 후 장안에서 강동으로 부모를 뵈러 갈 때 전기(錢起), 이가우(李嘉祐), 한굉(韓翃) 등이 나와 시를 지어 송별하였다. 상위(相韋)절도사 설숭(薛嵩)의 빈객이 되었다가, 784년 태자정자(太子正字)에 임명되고, 정원 연간(785-804)에 감찰어사까지 올랐다. 원대 신문방(辛文房)은 “법도가 약간 약하지만 어휘와 리듬이 청월하다”(法度稍弱, 字韻淸越)고 평하였다. 현존하는 시는 『전당시』에 11수, 『전당시보편』에 1수 등 모두 12수가 남아있다.


立春

입춘


玉律傳佳節, 옥 율관이 아름다운 절기를 알리니

靑陽應此辰. 봄이 오늘부터 시작이어라

土牛呈歲稔, 흙으로 만든 소가 풍년을 기약하고

彩燕表年春. 제비 모양 전채(剪綵)로 봄을 나타내네

臘盡星回次, 납월이 지나니 별자리가 제자리에 돌아오고

寒餘月建寅. 아직도 추위가 있는데 정월이 시작된다

風光行處好, 풍광은 다니기에 좋고

雲物望中新. 경물은 바라보니 새로워

流水初銷凍, 강물은 막 녹기 시작하고

潛魚欲振鱗. 숨은 물고기는 비늘을 떨치네

梅花將柳色, 매화꽃이 피고 버들 빛이 새로우니

偏思越鄕人. 특히나 고향 떠난 사람 생각나구나


위 시는 769년 진사과에 출제된 시첩시. 아래는 같은 해 진사과에 급제한 냉조양이 상원(남경)으로 돌아갈 때 한굉(韓翃)이 지어준 송별시다.


送冷朝陽還上元 

상원으로 돌아가는 냉조양을 보내며


靑絲纜引木蘭船, 푸른 닻줄 잡아당겨 목란나무 배를 준비하니

名遂身歸拜慶年. 이름을 이룬 후 부모님 뵈러 돌아가는 길이라네

落日澄江烏榜外, 검은 배 밖으로 맑은 강에 저녁 해 떨어지고

秋風疏柳白門前. 백문 앞 성긴 버들에 가을바람 지나가리 

橋通小市家林近, 다리로 통하는 저자는 고향집 숲과 가깝고

山帶平蕪野寺連. 산자락에 띠 두른 들엔 절들이 많다던데

別後剛逢寒食節, 헤어지면 이제 곧 한식절을 만날 터인데

共誰携手上東田? 누구와 손잡고 동전루(東田樓)에 오르나?


동전루 : 사조(謝朓)의 「동전루에서 놀며」(遊東田)에 “울적하여 즐거운 일 없으매, 손잡고 나와 즐겨보네”(慼慼苦無悰, 携手共行樂.)란 구절을 환기한다. 동전(東田)은 동전루로, 남조 제 문혜태자(文惠太子)가 지금 남경의 종산 아래 세운 누대이다. 양나라 때 심약(沈約)이 여기에 별장을 두었다. 여기서는 냉조양의 거처를 가리킨다.


〔해설〕 강남으로 떠나는 친구를 보내며 쓴 시이다. 769년 냉조양이 진사에 급제한 후 벼슬을 받지 않은 채 성친하러 내려가매 도성의 명사들이 전송하러 일시에 모였다. 이때 한굉뿐만 아니라 전기, 이단, 이가우 등도 시를 지어 전송하였다. 이 시는 청신하고 빼어난 언어로 강남의 풍광을 그려낸 점에서 널리 음송(吟誦)되었다. 오방(烏榜)과 백문(白門)의 대비가 독특하고, 다리에서 숲까지의 근경과 산에서 절까지의 원경이 시원스럽게 그려졌다. 외(外)와 전(前)의 위치가 선명하고, 통(通)과 대(帶)의 동사도 경관을 구체적이고 적절하게 짚어내어 시의 운치가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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