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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조는 인류와 궤를 같이했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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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부족한 여름이면 매양 낙동강 물금 정수장 녹조 현장 사진을 큼지막하게 싣는 언론보도를 본다.

이명박 정권이 종말을 고하고는 새로운 소재가 생겨 그 사대강 사업의 각종 보 사진이 녹조의 참상을 말해주는 증좌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보를 막지 않으면 물을 끌어올 수가 없디



그리하여 녹조는 인위에 의한 환경파괴를 경고하는 변주곡으로 끊임없이 연주된다.

그러면서 이르기를 물은 흘러가는대로 냅두야 한다는 언설이 통용한다.

그것이 자연이라 한다.

이 자연은 실은 노자의 자연이지 양놈들의 번역 모태인 네이처와는 거리가 좀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류는 그 자연과 사투를 간단없이 벌였다.

자연은 무자비하다.


보를 쌓는 이유는 그것이 아니면 물은 흘러가고 마는 까닭이다. 물 하고 빠이빠이 할 일 있니?



그 무자비는 훈육되고 제어되어야 했다.

욕 되바가지로 먹는 전두환 최대 치적은 한강 범람을 실은 원천에 가깝게 제어했다는데 있다.

그조차 지금은 틈만 나면 한강 하중보로 들어가 썩은 물과 진동하는 쓰레기 악취와 치환되기도 한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개발론자다.
무자비한 개발론자다.

일전에 나는 문화재 보호운동을 환경보호 운동 일환으로 봤다가 결별했다 한 적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통용하는 환경운동 일반론과 내가 생각하는 문화재보호는 판이하다.


보를 막아 끌어온 물은 다시 보를 막아야 쓴다.



지금 우리 문화재 현장엔 무자비한 개발이 필요하다고 나는 본다.

돈도 벌어야 한다. 돈을 벌지 못하는 문화재 필요없다.

물론 이런 개발은 적절히 제어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찾지않고 돈도 되지 않는 문화재는 필요없다.

이 얘기하려 했던 게 아닌데 옆으로 샜다.

옛날 기록을 보면 더러, 아니 자주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대목을 본다.

볼짝없다.


보를 막아야 동네 어구로 물을 끌어온다



녹조 현상이다.

일본에서는 이런 기록 보기가 힘들다.

비가 많이 오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저주받은 땅이다.

개발은 그 저주들을 향한 열변이요 저항이다.

(2016. 8. 17)

***

댐이며 보며 물을 가두는데 대한 저항이 심심찮다. 그것이 자연을 반하는, 그래서 그에 역행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이른바 환경론자들을 중심으로 이론의 여지없이 팽배하다.

가만히 냅두라 그네들은 말한다.

냅두여?

냅두면 그래 자연이 고맙데이 나는 그에 보상하께 하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깍지라 자연은 결코 자비롭지 않다.

물을 가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둬야 물을 쓰기 때문이다. 가두지 않은 물은 흘러갈 뿐이다.

가두지 않은 물은 암짝에도 소용없다. 가두지 않고선 모두가 물지게꾼이 되어야 한다.

녹조가 든다고 팔당댐 터뜨릴 셈인가? 그럼 수돗물은 여의도가서 매일매일 퍼와야 한단 말인가?

보를 막지 않고선 어케 농수를 댄단 말인가?

미나리깡 농사나 지으려는가?

물은 막야야 한다.

막아야 쓴다.

흘러가는 물은 수도도 아니요 우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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