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권제4 신라본기4 진평왕본기 : 46년(624)…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와서 우리의 속함성(速含城), 앵잠성(櫻岑城), 기잠성(暫城), 봉잠성(烽岑城), 기현성(旗縣城), 혈책성(穴柵城) 등 여섯 성을 에워쌌다. 이에 세 성은 함락되거나 혹은 항복하였다. 급찬 눌최(訥催)는 봉잠성, 앵잠성, 기현성의 세 성 군사와 합하여 굳게 지켰으나 이기지 못하고 전사하였다.
삼국사기 권제47(열전 제7) 눌최 열전 : 눌최(訥崔)는 사량 사람으로 대나마 도비(都非)의 아들이다. 진평왕 건복(建福) 41년 갑신(진평왕 46: 624) 겨울 10월에 백제가 대거 내침하여 군사를 나눠 속함(速含)[현재의 경남 함양군], 앵잠(櫻岑), 기잠(岑), 봉잠(烽岑), 기현(旗懸), 혈책(穴柵) 등 여섯 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왕이 상주(上州), 하주(下州), 귀당(貴幢), 법당(法幢), 서당(誓幢) 등 5군에게 가서 구하도록 하였다. [5군이] 이미 도착하여 백제 군사가 진영을 갖춘 것이 당당함을 보고 그 예봉을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아 머뭇거리며 진격하지 못하였다. 어느 사람이 주장하였다.“대왕께서 5군을 여러 장군에게 맡겼으니 국가의 존망이 이 한 싸움에 달렸다. 병가(兵家)의 말에 ‘승리가 판단되면 진격하고, 어려울 것 같으면 후퇴하라.’ 하였으니 지금 강적이 앞에 있으니 계략을 쓰지 않고 직진하였다가 만일 뜻대로 되지 않으면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다.”장군과 보좌관들이 모두 그렇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미 명을 받아 출동하였으므로 그냥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보다 앞서 국가에서 노진(奴珍) 등 여섯 성을 쌓으려고 하였으나 겨를이 없었는데 드디어 그 곳에 성을 다 쌓고 돌아왔다. 이에 백제의 침공이 더욱 급박하여져 속함, 기잠, 혈책의 세 성이 함락되거나 또는 항복하였다. 눌최가 남은 세 성으로써 굳게 지키다가 5군이 구원하지 않고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병졸에게 말하였다. “봄날의 따뜻한 기운에는 모든 초목이 꽃을 피우지만 추위가 닥치면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늦게 낙엽진다. 지금 외로운 성에 구원이 없어 날로 더욱 위험하다. 지금이 바로 진실로 뜻있는 병사와 의로운 사람이 절조를 다 바쳐 이름을 날릴 수 있는 때이다. 너희들은 장차 어떻게 하겠는가?”병졸들이 눈물을 뿌리며 말하기를 “감히 죽음을 아끼지 않고 오직 명을 따르겠습니다.” 하였다.성이 장차 함락되려 할 때 군사들이 거의 다 죽고 몇 사람 밖에 남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 구차히 살아 보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눌최에게 종이 한 명 있었는데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다. 어느 사람이 일찍이 말하기를 “소인(小人)이 특이한 재주를 가지면 해롭지 않은 경우가 없으니, 이 종을 마땅히 멀리하라!” 하였다. 그러나 눌최는 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때에 성이 함락되어 적이 들어오자 그 종은 활을 당기어 화살을 끼워 눌최의 앞에서 쏘는데 빗나가는 바가 없었다. 적이 두려워하여 앞으로 나오지 못하다가 어느 적군 한 명이 뒤에서 와서 도끼로 눌최를 쳐 눌최가 쓰러지니 종이 돌아서서 싸우다가 주인과 함께 죽었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비통해 하고 눌최에게 급찬의 관등을 추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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