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서울의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프랭클린 원정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 원정대는 두 척이나 되는 배에 133명이나 되는 사람을 싣고 북극해로 들어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 충격의 여파는 무척 컸다. 게다가 이 원정대의 지휘자는 항해에 풍부한 경험이 있는 현역 해군 제독이라는 점에서 더욱 더 문제가 되었다.
프랭클린 원정대를 구성한 두척의 배-. Erebus와 Terror.
프랭클린 원정대가 그린랜드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영국은 끊임없이 탐사대를 보냈다. 이들은 프랭클린 원정대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원정대가 파견될 때 마다 점점 서북항로의 지리적 정확도는 올라가게 되었다. 캐나다 북부의 북극권 지역의 지형이 항해에 극히 험난한 복잡 다단한 지형이라는 것이 점점 분명하게 밝혀지게 된 것이다. 아마도 프랭클린 원정대는 이 복잡한 지형에 갇혀 북서항로를 돌파하지 못하고 어딘가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서?
겨울 북극권은 모든것이 얼어 있다. 공항까지도..
사실 프랭클린 원정대는 출항할때 준비가 부족한 상태였다고는 볼 수 없다. 해군 현역 제독이 주관하고 대영제국 정부가 지원하는 이상 이들은 당시 구비할 수있는 장비와 물품들을 풍부하게 준비한 상태에서 출항하였다. 이들은 출항 당시 자그마치 3년치의 식량과 물을 준비하였다. 전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이상 단기전 보다는 장기전의 승부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극해의 지루한 겨울에서 조금이라도 탈피하기 위하여 책을 무려 2,900권이나 가지고 탔고 배 안에는 2마리의 개와 1마리의 원숭이까지 타고 있었다. 이처럼 풍부한 보급품을 가지고 최대 3년간을 북극해를 떠다니다 북서항로를 돌파할 생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북극해 탐사 전략은 무리한 것이 아니었다.
아문젠의 선구를 이루는 노르웨이의 탐험가 중 난센 (Fridtjof Nansen: 1861-1930)이라는 사람이 있다.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 부터 독립할 당시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던 사람으로 노르웨이 민족사 못지 않게 북극해 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난센. 탐험가이자 정치가. 노벨평화상 수상자.
난센은 북극해 탐사에서 매우 독창적인 방법을 시도했는데 당시 구사했던 전략이 바로 프랭클린 원정대와 매우 유사한 전략이었다.
우선 난센은 북극해 탐사에 사용될 배를 자작하였다. 이 배가 바로 저 유명한 북극탐사선 "Fram" 호이다.
이 당시 북극해에서는 겨울에 바다가 얼면서 배가 좁은 해역에 갇혀 결국 점점 늘어나는 얼음 때문에 난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난센은 프람호를 겨울에 얼음이 좁혀 오더라도 종국에는 그 위에 타고 앉을수 있는 형태로 제작하였다. 얼음이 완전히 얼어버린 바다에서도 배가 부서지는 대신 그 얼음 위로 타고 올라갈수 있게 설계한 것이다.
얼음에 갇혀 난파한 배-.
겨울에도 얼어서 난파하지 않고 빙결한 얼음 위로 올라탄 프람호. 이런 설계가 없었던 많은 북극 탐험선은 얼음 때문에 겨울이 되면 거의 난파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프람호가 떠다닌 북극해. 많은 보급품을 싣고 그야 말로 "표류"하는 것이다. 정확한 지리적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미지의 항로를 개척하는데 있어 이 방법 말고 또 있을까.
다음은 되도록 많은 보급품을 싣고 북극해를 떠다니는 것이다. 이처럼 장기간을 "표류"하면서 배로 북극점에 도달할 항로를 찾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난센은 13명의 선원과 함께 프람호를 타고 무려 3년간을 북극해를 떠 다닐수 있었다.
수천권의 책을 가지고 탐험선을 띄운 프랭클린처럼 난센 역시 프람호에 피아노까지 싣고 다녔다. 길고 긴 극지의 끝도 없는 겨울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난센 역시 그가 마지막으로 얻은 결론은 "북극점은 배로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난센이 19세기 최후반 (1893-1896)에 구사한 이 전략을 보면 프랭클린이 3년간을 떠 돌면서 북서항로를 개척하겠다고 하는 전략은 절대로 무리가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난센의 프람호-. 이 배는 결국 같은 노르웨이 출신인 젊은 아문센에게 양도되어 남극 탐험에도 사용되었다. 역사적인 함선이라 할 만하다.
프랭클린의 북극해 원정대는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원정탐험에서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와는 별개로 그의 이야기는 책으로 씌어져 이후 세계적인 탐험가로 성장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아문젠 역시 프랭클린 원정대 책을 읽고 북극 탐험가의 꿈을 꾸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프랭클린의 실종은 19세기 중반에 벌어진 사건이지만 20세기까지도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리고 실종된 지 백년이 넘은 20세기 후반들어서야 이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였는지 마침내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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