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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삼재三災와 삼재막이 (2004)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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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1 06:30:24
<삼재(三災)와 삼재막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연초에 그 해 운수를 점치면서 흔히 삼재(三災)가 들었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삼재는 글자 그대로는 세 가지 재앙이라는 뜻이니, 그래서 삼재가 낀 사람은 그런 재앙이 현실화되지 않게끔 소극적으로는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며, 더욱 적극적인 타개 방법으로 그러한 액을 풀어낼 수 있는 액막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독특한 삼재(三災)는 사전적 의미로는 물ㆍ불ㆍ바람에  의해 일어나는 재해로서 수종(水腫)ㆍ심화(心火)ㆍ풍병(風病)을 의미한다.

그래서 삼재에 걸린 사람은 이런 재해를 막기 위해 부적이나 기타 주술적  행위를 하는 액막이를 하는데 이를 일러 '삼재막이'라고 한다. 

 

이른바 산신도에서 호랑이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지닌 소제消災의 염력에서 비롯한다. 거기에 왜 동자가 끼어드는지는 섹슈얼 코너테이션으로 접근해야 한다. 산신이 든 부채도 같은 맥락이다. 

 

삼재는 12지를 따져 3년간에 걸쳐 들게 된다. 조선후기 때 편찬된 세시기인  「동국세시기」에 기록된 삼재법은 다음과 같다. 즉 사유축(巳酉丑)이 든 해에 태어난 사람은 해자축(亥子丑)의 해에, 신자진(申子辰)이 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인묘미(寅卯未)의 해에, 해묘미(亥卯未)에 태어난 사람은 사오미(巳午未)의 해에,  인오술(寅午戌)에 태어난 사람은 신유술(申酉戌)의 해에 삼재가 든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다면 올해는 갑신년 원숭이의 해이니 인(寅=호랑이띠)ㆍ오(午=말띠)ㆍ술(戌=개띠) 생이 '들삼재'에 해당된다. 

삼재는 1년으로 끝나지 않고 3년에 걸쳐 있다. 그래서 첫 해는 삼재가 드는  해라고 해서 '들삼재'라고 하고 2년째는 그렇게 들어온 삼재가 자리를 잡는다 해서  '누울삼재', 마지막 해는 삼재가 나간다고 해서 '날삼재'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삼재가 드는 해는 더욱 조심한다는 관념이 지배했다.

하지만 삼재 때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를 '복삼재'라고 한다.

액막이는 정월초, 정월 14일, 입춘 등에 행한다. 대개 무당이나 절을 찾아가 삼재경 등을 읽거나 삼재막이 굿을 행함으로써 액막이를 하고 부적을 받아오곤 했다.

 

불은 정화 소제라는 상징이 강하다. 다 태워버리지만, 그것을 통해 재생을 창조한다. 함안 낙화놀이는 그것을 대표한다.

 

이때 사용되는 부적으로는 머리가 세 개 달린 매나 호랑이가 그려진 것이 대표적이다. 머리 세 개인 매를 그린 부적은 이미 「동국세시기」에도 보인다. 

호랑이가 애용된 것은 이 동물에는 귀신을 제압하는 힘에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산신도에 유독 호랑이가 많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민간에서는 삼재가 낀 사람의 속옷을 태우면 삼재가 달아난다는 생각이 있었다.

또 삼재에 걸린 사람의 이름과 사주, 그리고 약간의 돈을 넣은 허수아비를 삼거리 등에 갖다 버리는 방식도 영남지방에서 많이 전승되기도 했다. 

 

쥐불놀이 역시 소제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도교의 습속에서 유래한 삼재를 말끔히 씻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역시 도교에서는 끊임없는 선행(善行)을 강조하고 있다. 신라 최초의 여왕 시호(죽은  뒤 올린 이름)가 선덕(善德=선행<善行>)인 까닭도 아마 삼재 신앙과 밀접할 것이다.  (도움말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taeshik@yna.co.kr 
(끝)

 

***

2004년 글이라 지금 기준에서 보면 손대거나 교정해야 할 대목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사를 보면 도움말을 김종대 선생이 주었다 하는데, 뭐 준 게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이렇게 돕고 사니 지금 국립민속박물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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