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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선도성모(仙桃聖母)

by taeshik.kim 2018.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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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악고분군에서 바라본 선도산>


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를 낳은 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칭호. 선도산을 지키는 여신 혹은 산신으로 추앙해서 이리 일컫은 듯하다. 성모(聖母)란 성스러운 어머니라는 뜻으로 신모(神母)라고도 하니, 신라를 낳은 위대한 어머니를 뜻한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 1 신라시조(新羅始祖) 혁거세왕(赫居世王) : 전한(前漢) 지절(地節) 원년(元年) 임자(壬子·BC 69 ; 고본古本에는 건호建虎 원년元年이라 했고, 건원建元 3년이라고도 했으나 이는 모두 잘못이다) 3월 초하루에 상부(上部) 조상들이 저마다 자제(子弟)를 거느리고 알천(閼川) 언덕 위에 모여 의논했다.  "우리들은 위로 임금이 없어 백성들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모두 방자하여 저 하고자 하는 대로 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서 임금을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지 않는단 말인가."이에 그들이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이라는 우물 가에 번갯빛처럼 이상한 기운이 땅에 닿도록 비치고 있다.  그리고 흰 말 한 마리가 땅에 굻어 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곳을 찾아가 조사해 보았더니 거기에는 자줏빛 알 한 개(혹은 푸른 큰 알이라고도 함)가 있다. 그러나 말은 사람을 보더니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알을 깨고서 어린 사내아이를 얻으니, 그는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모두 놀라 이상하게 여겨 그 아이를 동천(東泉; 동천사東泉寺는 사뇌야詞腦野 북쪽에 있다)에 목욕시켰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따라서 춤을 췄다. 이내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해졌다. 이에 그 아이를 혁거세왕(赫居世王)이라고 이름하고(이 혁거세赫居世는 필경 향언鄕言일 것이다. 혹은 불구내왕弗矩內王이라고도 하니 밝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해설하는 자는 말하기를, "이는 서술성모西述聖母가 낳을 때 일이다. 그런 까닭에 중국사람들이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찬양한 말에, 어진 이를 낳아서 나라를 세웠다는 말이 있으니 바로 이 까닭이다"한다. 또 계룡(龍龍)이 상서祥瑞를 나타내어 알영閼英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어찌 서술성모西述聖母의 현신現身을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위호(位號)를 거슬감(居瑟邯)이라고 했다(혹은 거서간居西干이라고도 하니 그가 처음 입을 열 때에 스스로 말하기를, "알영거서간閼英居西干이 한번 일어났다"한 그 말로 인해서 일컬은 것이다. 이 뒤부터 모든 왕자王者의 존칭이 거서간居西干이 되었다). 이에 당시 사람들은 다투어 치하하기를 "이제 천자(天子)가 이미 내려왔으니 마땅히 덕 있는 왕후(王后)를 찾아 배필을 삼아야 합니다"했다. 이날 사량리(沙梁里)에 있는 알영정(閼英井; 아리영정娥利英井이라고도 한다) 가에 계룡(鷄龍)이 나타나서 왼쪽 갈비에서 어린 계집애를 낳았다(혹은 용龍이 나타났다가 죽었는데 그 배를 가르고 계집애를 얻었다고 했다).  얼굴과 모습이 매우 고왔으나 입술이 마치 닭의 입부리와 같았다. 이에 월성(月城) 북쪽에 있는 냇물에 목욕을 시켰더니 그 부리가 떨어졌다. 이 일 때문에 그 내를 발천(撥川)이라고 한다. 남산(南山) 서쪽 기슭(지금의 창림사昌林寺다)에 궁실(宮室)을 세우고 이들 두 성스러운 어린이를 모셔다가 길렀다.  남자아이는 알에서 낳았고, 그 알의 모양이 박[匏]과 같았는데, 향인(鄕人)들은 박을 '박(朴)'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성(姓)을 박(朴)이라고 했다.  또 여자아이는 그가 나온 우물 이름으로 이름을 삼았다. 두 성인(聖人)은 13세가 되자 오봉(五鳳) 원년(元年) 갑자(甲子·BC 57)에, 남자는 왕이 되어 이내 그 여자로 왕후(王后)를 삼았다. 


삼국유사 제5권 감통(感通) 제7 선도성모(仙桃聖母) 수희불사(隨喜佛事) : 진평왕(眞平王) 때 지혜(智惠)라는 비구니(比丘尼)가 있어 어진 행실이 많았다. 안흥사(安興寺)에 살았는데 새로 불전(佛殿)을 수리하려 했지만 힘이 모자랐다. 어느날 꿈에 모양이 아름답고 구슬로 머리를 장식한 한 선녀가 와서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나는 바로 선도산(仙桃山) 신모(神母)인데 네게 불전을 수리하려 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여 금 10근을 주어 돕고자 한다. 내가 있는 자리 밑에서 금을 꺼내서 주존(主尊) 삼상(三像)을 장식하고 벽 위에는 오삼불(五三佛) 육류성중(六類聖衆) 및 모든 천신(天神)과 오악(五岳) 신군(神君·신라 때 오악은 동쪽 토함산吐含山, 남쪽 지리산智異山, 서쪽 계룡산鷄龍山, 북쪽 태백산太伯山, 중앙中央의 부악父岳, 또는 공산公山이다)을 그리고, 해마다 봄과 가을 10일에 남녀 신도를 많이 모아 널리 모든 함령(含靈)을 위해 점찰법회(占擦法會)를 베푸는 것으로써 일정한 규정을 삼도록 하라(본조本朝 굴암지屈弗池의 용이 황제皇帝의 꿈에 나타나 영취산靈鷲山에 낙사도장樂師道場을 영구히 열어 바닷길이 편안할 것을 청한 일이 있는데 그 일도 역시 이와 같다). 지혜가 놀라 꿈에서 깨어 무리들을 데리고 신사(神祀) 자리 밑에 가서 황금 160냥을 파내어 불전 수리하는 일을 완성했으니, 이는 모두 신모(神母)가 시키는 대로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 사적은 남아 있지만 법사(法事)는 폐지되었다. 신모는 본래 중국 제실(帝室)의 딸이며, 이름은 사소(娑蘇)였다. 일찍이 신선의 술법(術法)을 배워 해동(海東)에 와서 머물러 오랫동안 돌아 가지 않았다. 이에 부황(父皇)이 소리개 발에 매달아 그에게 보낸 편지에 말했다. "소리개가 머무는 곳에 집을 지으라." 사소는 편지를 보고 소리개를 놓아 보내니, 이 선도산(仙桃山)으로 날아와 멈추므로 드디어 거기에 살아 지선(地仙)이 되었다. 이 때문에 산 이름은 서연산(西鳶山)이라고 했다. 신모는 오랫동안 이 산에서 살면서 나라를 진호(鎭護)하니 신령스럽고 이상한 일이 매우 많았다. 때문에 나라가 세워진 뒤로 항상 삼사(三祀)의 하나로 삼았고, 그 차례도 여러 망(望)의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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