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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18

신원확인 작업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 OJ 심슨 사건, 고고학도 엎어버리다 앞서 DNA로 신원확인 작업에 대한 글을 하나 올렸다. 이 신원확인 작업은 고고학에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법의학 분야에서 발전한 기법이다. 신원이 불명한 인골이 하나 나왔다고 하자. 이 인골이 누구 것인지 어떻게 찾겠는가. 이것을 DNA 추출한 후에 여기서 신원을 찾아가는 기법이건 전부 법의학계에서 다 확립된 방법으로 고고학 쪽에서는 옛 인골에서 DNA를 추출하면그 방법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법의학 쪽에서 DNA로 신원확인을 하는 기법은그 결과가 법정에서 증거로 이용되기 때문에 나와도 그만 안나와도 그만 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는 일반적인 연구와는 결이 다르다 결과에 따라 생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할 판이기 때문에 DNA 신원확인 기법의 엄정함은 생각보다 훨씬 빡세다. 이 분야 연구가 이렇게 빡세진 이유 .. 2026. 7. 7.
250년 전 미국 독립전쟁 전사자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 (추정) 미 독립전쟁 당시 전사자 신원을 확인했다는 보도가 있다. 어떻게 확인했을까? 포스팅 된 글에 논문이 링크되어 있지 않아가능한 방법을 몇 개 생각해 본다. 우선 병사의 뼈에서 DNA는 뽑았을 것이다. 이를 분석하여 1. 미토콘드리아 DNA haplotype2. Y 염색체 profile3. 상염색체 profile 이렇게 세 가지 정보는 확보했을 것이다. 이 중 1번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 유전,2번 Y 염색체 프로파일은 부계유전, 그리고 3번 상염색체 프로파일은 모계와 부계 유전 둘다 가지고 있다.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렇게 dna 정보만 가지고 있는 경우,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저 당시 병적부다. 최소한 병적부에 이름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병적부에 올라 있는 .. 2026. 7. 7.
선물로 주고 받는 조선의 끓인 소금 조선시대 후기의 상당 부분까지도 우리나라는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이 미진하여, 소위 이 시기를 선물경제라고 하는 것도 봤는데, 선물경제라는 것이 어찌 성립하랴. 선물경제라는 것은 결국 물물교환을 폼나게 이른 것이니, 사족들도 대부분 자급자족 경제안에서 제한된 물품만 교환해서 먹고 살았으니이 시기 "선물"이란 귀한 것을 증여하는 요즘과 달리 대부분 생필품 위주로 귀한 것을 선물로 주는 일이 오히려 드물었다. 이 선물 중에 소금이 있는 바, 사족들이 소금을 직접 만들었을 리도 없으니대부분 바닷가에서 만들어진 소금이 어찌 어찌하여 사족들 손에도 들어와 이를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로 증여하고그만큼 댓가를 쳐서 뭔가를 받아 오는 것이겠다. 이 시점에 소금은 앞서 김단장께서 포스팅 한 중국이야기처럼우리나라도 소금을 끓여.. 2026. 7. 1.
화폐가 왜 안돌았는지를 묻지 말고 조선시대를 포함한 우리 역사에서는, 화폐가 왜 안 돌았는지를 묻지 말고화폐가 18세기부터 왜 갑자기 돌기 시작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근대 이전 우리나라는 화폐가 제대로 돈 적이 없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화폐가 유통되며 떠들썩하게 경제적 호황을 누린 적이 없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18세기까지도 사실상 화폐의 역할을 대신했던 쌀, 면포 등 현물화폐는그 이전시기도 계속 비슷한 모습으로 그렇게 유지되었다. 고려시대? 비슷하다. 고려도경을 보면 이 시대도 여전히 현물화폐가 주로 쓰였고, 나라에서는 화폐를 유통시키기 위해 꽤 노력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소위 실학자라는 이익처럼 화폐를 전부 폐지해야 한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한 영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대, 정부는 항상 화폐를 유.. 2026. 6. 25.
군역자를 만들어내야 하는 호적 우리나라 호적은 결국 군역 때문에 유지된 것이다. 물론 그 외 다양한 용도가 있었겠지만, 결국 호적에 표시된 신분의 상당 부분이 군역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요즘 주민등록에서 병역 여부를 기록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 호적의 전통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호적이라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 국가의 존속을 위협하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을 여실히 볼 수 있으니, 군역을 담당할 계층이 뒤로 갈수록 노비로 빠져 나가버린다는데 심각성이 있었다 하겠다. 따라서 평민층이 줄고 노비층이 늘어가니 군역을 담당할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율곡이 지적한 바 "경장을 해야 할 병폐"는 틀림없이 이를 가리킨 것이니, 양반들은 조선시대 내내 군역을 담당할 사람이 줄어드는 이유로 서얼.. 2026. 6. 23.
자기 아버지도 모른다는 19세기 한량閑良 언젠가 한 번 써 본 거 같지만19세기 우리나라 호적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하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유학幼學인 것도 모잘라, 18세기만 해도 무과 예비군으로 이것도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었던 직역-. 한량閑良을 직역으로 적은 사람이, 할아버지 할머니는 고사하고 아버지 어머니 이름도 몰라서, 조상 이름을 적는 곳에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이름 모름이라고 적고, 처가쪽도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이름 모름이라고, 버젓이 적어 놓은 이가 있으니, 이 사람들은 평민도 아니고 노비였던 이가 속량된 후 아예 하층 양반 직역인 한량까지 직역이 올라간 사람으로19세기 중반 호적을 보면 이런 사람들이 한 동네에 한둘은 보인다. 19세기 중반이라고 해서 노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는데, 식년 호적에서 올해.. 2026.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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