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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조선시대 미라32

정릉에 묻힌 중종 시신은 어디로 갔나 임진왜란 때 선정릉은 왜병에 의해 도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도 도굴범이 사실 정말 누군가 하면 여러 의견이 있을 텐데, 임란 이후 도굴 한 놈을 잡아보내라는 조선 정부의 전언에 대마도민 범죄자 아무나를 잡아 보냈는데 대략 이들이 범인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처형하고 사안을 종결시켰지만, 왕조실록인가에 보면, 당시 이 릉을 도굴하는데 참여한 조선인을 처형한 이야기가 나오니, 도굴범을 사주한 놈들이 왜병이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도굴 자체에 일부 조선인이 가담했던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각설하고-. 선릉에 묻힌 두 분 왕과 왕비의 시신은 도굴범들에 의해 소각되어 재만 남아 있었다는데, 정작 정릉에 묻힌 중종 임금 무덤에선 그 안에 왠 시신이 한 구 발견되어 도굴을 조사하던 조선정부를 당혹하게 했다. .. 2026. 6. 16.
조선시대 미라 연구 초창기의 작업 (2007년) 조선시대 미라 연구는 필자 혼자 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많은 분이 도와주신 덕이다. 아래 사진은 2007년 어느날, 아직까지 조선시대 미라가 도대체 무엇인지 갈피를 못잡던 시절, 해외 전문 연구자와 함께 현장에서 의견을 나누던 사진이다. 이 당시 박준범 원장께서 현장에서 크게 도와주셨다. 기록 삼아 사진을 남겨 둔다. 2026. 6. 10.
일제시대 대학생 수는 고등학교 수가 결정한다 식민지시대 대학생 수는 고등학생 수와 1대 1로 대응했다. 쉽게 말해 일본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국공립대 어딘가는 갈 수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도 인기과는 있기 때문에 경쟁에 밀려 원하는 곳을 못 가는 수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고등학생 정원은 대학생수와 크게 다르지 않아 일본의 구제 교육제도에서 고등학생이란 경쟁에서 자유로운 학창시절의 상징처럼 되어 있었다.따라서 고등학교가 몇 개나 있는가를 알면, 할당된 대학생 숫자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일본에는 구제고등학교舊制高等學校가 몇 개가 있었는가. 한 번 알아보자.먼저 구제고등학교 정점에는 제1고등학교에서 제8고등학교까지 8개교가 있다.이를 "넘버 스쿨"이라 불렀다. 고등학교 이름 앞에 번호를 붙여 불렀기 때문이다. 그 아래에는 번호가 아니라.. 2025. 9. 14.
우리나라 "연구실" 해포 작업: 2008년에 시작되다 우리나라 발굴현장에 발견된 미라에 대한 해포작업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다만 2008년 이전까지는 해포작업은 거의 발굴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해부터 복식전공 교수님들과 협의 하에 해포를 발굴현장에서가 아니라 방호복과 마스크, 헤드캡, 수술용 글러브를 착용한 상태로 오염을 통제한 실험실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해에만 다수의 미라 해포작업이 서울의대 해부학교실에서 실시되었는데, 이때 큰 도움을 주신 분이 박준범 원장님, 민소리 선생님, 이양수 관장님, 그리고 고부자 교수님, 이은주 교수님, 송미경 교수님 등을 위시하여 많은 복식 전공자 선생님이 계시고, 이 블로그 김단장께서도 문화계 언론인으로서 해포작업의 전 과정을 채록한 바 있었다.  미라 해포작업이 발굴 현장에서가 아니라 연구.. 2025. 2. 10.
조선시대 미라에 대한 마지막 책: 대중서로 가는 징검다리 조선시대 미라에 대해서는 그 동안 논문도 많이 냈고 단행본 챕터로도 발표한 게 많아 사실 이제는 쓸 만큼 썼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최근에 조선시대 미라만 다룬 단행본을 하나 써달라는 청이 있어 해외 출판사와 구두계약을 한 상태다. 이 책 집필 약속을 하고 나니 고민인 것이 조선시대 미라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논문 단행본 챕터로 쓴 것이 많아 쓸 만큼 쓴 상태인데 막상 보니 또 조선시대 미라 자체에 대한 책은 하나도 나온 게 없어 이런 책이 필요하다는 출판사 이야기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따라서 쓰는 게 맞기는 맞겠는데 그냥 쓰자니 또 이미 발표한 내용의 반복이 될것 같아 고민이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을 마침내 정리했다. 책의 내용은 흥미진진하게, 학술서적이라기 보다는 학술서적과 대중서 딱 중간 정도의 .. 2024. 10. 1.
조선시대 미라 연구에 대한 서지 블로그 이 블로그에 여러 차례 이야기한 대로, 필자는 조선시대 미라 조사는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다. 앞으로 조사는 오창석, 홍종하 두 교수에 의해 진행될 것임을 여러 차례 밝혔다. 필자가 지난 20년간 진행해온 연구를 그대로 묵힐 수는 없어 현재 단행본으로 정리 작업 중인데, 이 외에도 온라인 상에 한글로 해제를 간단히 붙여 놓은 조선시대 미라 연구에 대한 서지 블로그를 하나 준비했다. 지금은 틀만 잡은 상태이고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한글로 서지 해제를 논문마다 붙여 둘 생각이다. 논문에 대한 링크는 어차피 온라인 서칭하면 다 나오는 논문들이라 피차 번거로울 것 같아 붙이지 않았다. 완전히 완성된 형태는 아니지만 가끔은 들려들 주시기를 바라고, 어쨌건 20년간의 작업의 결과물이라 새로 이 작업을 이어 받는 .. 2024.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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