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 미상. 중국 전진(前秦)의 불교 승려로 그 왕 부견(符堅)에 의해 소수림왕(小獸林王) 재위 2년(372)에 고구려에 파견돼 포교활동을 전개했다.
삼국사기 권제18 고구려본기 제6) 소수림왕 : 2년(372) 여름 6월에 진(秦)나라 왕 부견(堅)이 사신과 중 순도(順道)를 파견하여 불상과 경문(經文)을 보내왔다. 왕은 사신을 보내 답례하고 토산물을 바쳤다. 대학(大學)을 세우고 자제들을 교육시켰다.
해동고승전 권 제1 :
삼국유사 제3권 흥법 제3 순도조려(順道肇麗) : <고구려본기(高句麗本記)>에 이렇게 말했다. "소수림왕(小獸林王)이 즉위한 2년 임신(壬申; 372)은 곧 동진(東晉) 함안(咸安) 2년이며, 효무제(孝武帝)가 즉위한 해이다.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이 사신과 중 순도(順道)를 시켜서 불상(佛像)과 경문(經文)을 보내고(이때 부견符堅은 관중關中, 즉 장안長安에 도읍하고 있었다), 또 4년 갑술(甲戌; 374)에는 아도(阿道)가 동진(東晉)에서 왔다. 이듬해 을해(乙亥; 375) 2월에 초문사(肖門寺)를 세워 순도(順道)를 거기에 두고 또 이불난사(伊弗蘭寺)를 세워 아도가 있게 하니, 이것이 고구려에서 불법이 일어난 시초이다."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 순도와 아도가 북위(北魏)에서 왔다는 것은 잘못으로, 사실은 전진(前秦)에서 온 것이다. 또 초문사(肖門寺)는 지금의 흥국사(興國寺)이고 이불란사는 지금의 흥복사(興福寺)라고 한 것도 역시 잘못이다. 상고하건대 고구려의 도읍은 안시성(安市城)이며, 이것을 혹은 안정홀(安丁忽)이라고도 하는데 요수(遼水) 북쪽에 있다. 요수의 다른 이름은 압록(鴨綠)인데 지금은 안민강(安民江)이라고 한다. 그러니 어찌 송경(松京) 흥국사(興國寺)의 이름이 여기에 있을 수 있으랴? 찬(讚)해 말한다. 압록강에 봄 깊어 물빛은 곱고/백사장 갈매기 한가로이 조네/갑자기 어디서 들리는 노 젓는 소리에 놀라니/어느 곳 어선(漁船)인지 길손이 벌써 당도했네.
삼국유사 제3권 흥법(興法) 제3 순도조려(順道肇麗) : 도공(道公) 다음에 또한 법심(法深), 의연(義淵), 담엄(曇嚴)의 무리가 서로 이어 불교를 일으켰으나 고전(古傳)에는 기록이 없으므로 감히 그 사실을 순서에 넣어 편찬하지 못한다. 자세한 것은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 있다. 고구려본기(高句麗本記)에 이렇게 말했다. "소수림왕(小獸林王)이 즉위한 2년 임신(壬申·372)은 곧 동진(東晉) 함안(咸安) 2년이며, 효무제(孝武帝)가 즉위한 해다.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이 사신과 중 순도(順道)를 시켜 불상(佛像)과 경문(經文)을 보내고(이때 부견은 관중<關中>, 즉 장안<長安>에 도읍하고 있었다), 또 4년 갑술(甲戌·374)에는 아도(阿道)가 동진(東晉)에서 왔다. 이듬해 을해(乙亥·375) 2월에 초문사(肖門寺)를 세워 순도를 거기에 두고 또 이불난사(伊弗蘭寺)를 세워 아도가 있게 하니, 이것이 고구려에서 불법이 일어난 시초다." 《해동고승전》에 순도와 아도가 북위(北魏)에서 왔다는 것은 잘못으로, 사실은 전진(前秦)에서 온 것이다. 또 초문사는 지금의 흥국사(興國寺)이고 이불란사는 지금의 흥복사(興福寺)라고 한 것도 역시 잘못이다. 상고하건대 고구려 도읍은 안시성(安市城)이며, 이것을 혹은 안정홀(安丁忽)이라고도 하는데 요수(遼水) 북쪽에 있다. 요수는 다른 이름이 압록(鴨綠)인데 지금은 안민강(安民江)이라고 한다. 그러니 어찌 송경(松京) 흥국사(興國寺)의 이름이 여기에 있을 수 있으랴? 찬(讚)한다. 압록강에 봄 깊어 물빛은 곱고, 백사장 갈매기 한가로이 조네. 갑자기 어디서 들리는 노 젓는 소리에 놀라니, 어느 곳 어선(漁船)인지 길손이 벌써 당도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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