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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 29년 늦가을, 왕이 지금의 마운령과 황초령 일대 변경 지역을 순시할 때, 조인(助人)으로 왕을 수행한 관료로, 주거지(혹은 관적)는 사탁부이고, 관위(官位)는 나말임을 알 수 있으나, 그 외 행적은 드러나지 않는다.
마운령신라진흥왕순수비(磨雲嶺新羅眞興王巡守碑. 568. 진흥왕29년) : 태창(太昌) 원년 세차(歲次) 무자(戊子) ▨▨ 21일 ▨▨ ▨흥대왕(▨興大王)이 ▨▨를 순수하여 돌에 새겨 기록한다. …수레 타고 나가 10월 2일 계해(癸亥)에 이르러…인하여 변계(邊堺) 지역을 설유(說諭)했다...이때 어가를 수행한 자로…조인(助人)은 사탁부(沙喙部) 순지(舜知) 나말(奈末)이다.
추기) 마운령비에 등장하는 이 중하급 관료는 특히 주시해야 한다. 다름 아닌 이름 표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순지(舜知)는 한문식과 신라식 짬뽕이다. '知'는 이 시대 신라 남자 이름 끝에 흔히 붙는 접미사 같은 표식이다. 그 의미와 관련해서는 남성 존칭이라는 설이 우세하다고 안다.
문제는 그 첫 글자 '舜'.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전설상의 고대 중국 이상적 제왕으로서, 요(堯)와 언제나 나란히 거론되는 순 임금을 지칭한다. 저 글자는 저 고유명사를 표기할 때 말고는 쓰이지 않는 글자다. 지극히 쓰임이 제한된 글자다. 이는 저 표기가 요순堯舜을 의식했다는 단적인 증거다.
이런 식으로 진흥왕 무렵엔 이름에 서서히 중국 영향이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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