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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시대를 반항한 탁오卓吾 이지李贄

by taeshik.kim 2019.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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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5 14:14:43


<'한마리 개'로 부활하는 이탁오>

공맹을 조롱한 이단자 평전 연이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쉰 살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지나지  않았다."


무조건 공자 맹자를 읊조리며 살아간 지난 50년 인생을 개에 견준 16세기 명말(明末)의 이단자가 국내 독서계 한 켠을 흔들고 있다.


"나는 어럴 적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배웠으나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 겠다. 공자를 존경하나 공자의 어디가 존경할 만한 지는 알지 못한다. 이는  난쟁이가 사람들 틈에서 연극을 구경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잘 한다'는 소리에 덩달아 따라하는 장단일 뿐이다." 


이탁오



그의 '똥개론'도 같은 맥락이다. 그림자를 보고 개가 짖어대기 시작하니, 뒤에 있는 개 또한 전후사정 아무 것도 모른 채 따라 짖어댄다. 그림자에 놀라  짖어대는 개를 따라 짖어대는 개와 나는 다를 바가 없다는 이 처절한 고백.


공자를 조롱하고, 맹자를 공격했으며, 나아가 그들의 적통 계승자로 자처한  또 다른 걸물 주희(朱憙)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대든다.


"원래 인간이 처음 생겼을 때는 오직 음(陰)과 양(陽) 두 기운과 남과 여 두 생명뿐이었다. 태초(太初)에 '一'(일)이니 '理'(리)니 하는 말이 없었으니, 무슨  '태극'(太極)이 있겠는가?"


16세기에 성리학을 이처럼 조롱한 인물이 무사할 리 없다.


"지금 속된 무리와 모든 가짜 도학자가 함께 나를 이단(異端)이라고  지목하니 나로서는 차라리 결국 이단이 됨으로써 그들이 내게 허명(虛名)을 더했다는 비난을 면하게 해 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떤가?"


이처럼 견디다 못해 "그래, 너희들 말 대로 차라리 나는 이단이 되련다"고 선언한 탁오(卓吾) 이지(李贄.1527-1602)라는 인물이 국내 학계에 급작스럽게  부각되고 있다.


몇년 전, 국내 독서계에 한창 인물 평전 바람이 불 때 체 게바라 열풍이 인 적이 있다. 물론 그때의 체 게바라 붐에 이탁오(李卓吾)를 견주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관심도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얼마 전까지 이탁오는 관련 학계에서조차 주목 대상이 아니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다. 그동안 그를 수식해온 말은 양명학 좌파 계열에 속하는 '미치광이 사상가' 정도였다.


그러다가 순천향대 중어중문학과 홍승직(洪承直.44) 교수가 1998년 이탁오 대표작 중 하나로 거론되는 '분서(焚書)'의 일부를 홍익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했다. 이어 2004년 마침내 완역본이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홍 교수는 발췌 번역본 서문에서 앞으로 누군가가 '분서' 완역본을 내 주기를 바란다고 쓴 적이 있다. 그의 이런 바람은 대전 한밭대 김혜경(44) 교수에 의해  완수됐다. 김 교수의 완역본은 전 2권으로 도서출판 한길사가 기획하는 동서양 고전시리즈인 '한길그레이트북스'로 선을 보였다.


고전 역주의 경우 언론의 주목을 받기 힘든 실정이나 이 분서만은 달랐다. 여기에 담긴 이탁오의 사상이 워낙 혁명적이었던 데다, 무엇보다 이탁오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은 체 게바라의 그것을 능가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윤남한 씨가 1974년에 또 다른 이탁오 저작인 '도고록(道古錄)' 일부를 번역한 적이 있다.


아직 충분하지 않으나 요긴한 역주 작업들을 발판으로 마침내 지난해 4월에는 '분서' 일부를 역주한 바 있는 홍승직 교수가 옮긴 중국의 '이탁오 평전'(돌베개)이 소개돼 다시금 이탁오가 주목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평전은 중국의 사회문화 평론가들인 옌리에산·주지엔구오 공저로서 무겁게만 느껴지던 이탁오를 국내 독자들에게 편안하게 안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아가 최근에는 경희대 사학과 명예교수로서 일찍이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이탁오를 공부한 신용철(申龍澈, 69) 교수가 또 다른 평전 '공자의 천하,  중국을 뒤흔든 자유인 이탁오'(지식산업사)를 내기에 이르렀다. 이탁오를 처음 만난 이후 33년의 연구를 집성한 평전이다. 


70대에 이른 노(老) 교수의 평전이어서 교과서처럼 딱딱할  것으로  짐작한다면 오산이다. 신 교수의 이번 전기물은 출생에서 비극적 자살에 이르기까지 이탁오  일생을 전형적인 시간 순서로 밟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인생역정에 대한 추적 작업이 실증학-고증학을 방불할 만큼 정밀하고 흥미롭다. 


아마도 이탁오 전기물로는 이만한 성과를 당분간은 기대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권말에 붙인 이탁오 연보와 저서 및 관련 논저 목록은 꼼꼼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면모는 다른 평전들에서 맛보기 힘들 것이다.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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