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안 코스는 내가 일부러 포항을 시작으로 강릉까지 서너 번을 자동차로 주파해 본 적 있다.
지금이야 도로가 잘 뚫린 데다 풍광도 좋지만 신라 시대로 들어가 그 당시에도 그러했는가는 별개 문제라
이 현대의 도로가 신라시대 그 도로를 근간으로 삼느냐는 별개 문제라, 이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금새 안다.
무엇보다 지금의 현대 동해안변 도로가 통과하는 지점이 저들 도로가 닦이기 전인 반세기 전, 혹은 백년 전으로만 돌아가도 이 동해안 코스는 막히는 데가 너무 많다.

간단히 말해 해변을 따라 경주 혹은 포항에서 강릉 속초까지 걸어서 간다?
가다가 산적 만나 죽고, 호랑이 만나 밥이 되고 만다.
지금은 경상북도로 편입됐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원도로 분류된 울진 땅에 죽변이라는 데가 있다. 요새는 뭐 회 먹으러 가는 데가 아닌가 하는데, 옴팡진 항구다.
현대의 죽변항 바로 남쪽에 봉평 신라비 전시관이라는 박물관이 하나 있다. 운영 주체는 울진군이지만, 울진군이 무슨 돈이 있어 박물관을 지었겠는가?
결국 중앙정부, 곧 불특정 대한민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은 아담사이즈 전시관이라 이곳이 그 유명한 고신라 시대 비석 중 하나인 울진 봉평 신라비 실물이 있는 데다.

이 죽변항과 그 남쪽 봉평비 전시관 일대 구글어스를 좀 더 자세히 본다.


지도로는 잘 드러나지 않거니와, 이 동해안 도로를 달리다 보면 하필 저기에 왜 신라 모즉지왕, 곧 법흥왕이 비석을 세웠는지 직감한다.
지금은 항구가 그 북쪽에 발달했지만, 저 봉평비로 보아 신라시대 죽변항은 봉평 전시관이 있는 그 앞바다였다.
저 봉평비는 신라시대 법령 포고비다. 뭐 신라사학도들이 이 일대에서 일어난 무슨 특정한 사건 판결문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다 개소리라, 일반 법령 포고비다.
저 시대 저 봉평비와 동시기에 다른 지역에서 건립된 비들도 조만간 출현할 수 있으리라 본다.
각설하고
저 동해안 지역, 그러니깐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그 동쪽을 생각할 적에 우리가 언제나 머릿속에 넣어두어야 하는 점이 육상 도로가 아니라 해상도로다.
동해안 해변을 따라 육상 교통?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았겠지만 이건 한니발이 코끼리 부대 끌고 알프스산맥을 넘는 일보다 더 험난한 과정이었다.
왜 죽변항에다가 남들 다 보라는 법령 포고비를 신라는 세웠는가?
나는 언제나 모든 텍스트는 독자 기준으로 생각하라 했다. 독자가 누구인가?

죽변 일대 신라 신민? 물론 당연히 포함되지만 가장 중요한 독자는 그 앞, 그러니깐 죽변항을 오가는 신라 신민들이다.
그만큼 죽변은 내왕이 많은 동해안 항구도시였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죽변항을 드나든 사람들 다음 행선지는 어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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