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복사석탑금동사리함기(皇福寺石塔金銅舍利函記. 706년. 신라 성덕왕 5년, 당<唐> 중종<中宗> 신룡<新龍> 2년) : 신문대왕(神文大王)이 오계(五戒)로 세상에 응하고 십선(十善)으로 백성을 다스려 통치를 안정하고 공(功)을 이루고는 천수(天授) 3년(692) 임진년 7월 2일에 돌아갔다. 신목태후(神睦太后)와 효조대왕(孝照大王)이 받들어 종묘(宗廟)의 신성한 영령(英靈)을 위해 선원가람(禪院伽藍)에 삼층석탑을 세웠다. 성력(聖曆) 3년(700) 경자년 6월 1일에 신목태후(神睦太后)가 마침내 세상을 떠나 높이 극락에 오르고 대족(大足) 2년(702) 임인년 7월 27일에는 효조대왕(孝照大王)도 승하하였다. 신룡(神龍) 2년(706) 경오년 5월 30일에 지금의 대왕이 부처 사리 4과와 6치 크기의 순금제 미타상 1구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권을 석탑의 둘째층에 안치하였다. 이 복전(福田)으로 위로는 신문대왕(神文大王)과 신목태후(神睦太后) 효조대왕(孝照大王)의 대대 성묘(聖廟)가 열반산을 베고 보리수에 앉는데 보탬이 되기를 빈다. 지금의 융기대왕(隆基大王)은 수명이 강산(江山)과 같이 오래고 지위는 알천(閼川)과 같이 크며 천명의 자손이 구족하고 칠보의 상서로움이 나타나기를 빈다. 왕후는 몸이 달의 정령과 같고 수명이 겁수(劫數)와 같기를 빈다. 내외 친속들은 옥나무처럼 장대하고 보물 가지처럼 무성하게 열매맺기를 빈다. 또한 범왕(梵王) 제석(帝釋) 사천왕(四天王)은 위덕(威德)이 더욱 밝아지고 기력(氣力)이 자재로와져 천하가 태평하고 항상 법륜을 굴려 삼도(三塗)의 중생이 어려움을 벗어나고 육도(六道) 중생이 즐거움을 받으며 법계(法界)의 중생들이 모두 불도(佛道)를 이루기를 빈다.
夫聖人垂拱處濁世而育蒼生至德無爲應閻浮而」
濟群有 神文大王五戒應世十善御民治定功成」
天授三年壬辰七月二日乘天所以 神睦太后」
孝照大王奉爲 宗庿聖靈禪院伽藍建立三層石」
塔聖曆三年庚子六月一日 神睦太后遂以長辭」
高昇淨國大足二年壬寅七月廿七日 孝照大王」
登霞神龍二年丙午五月卅日 今主大王佛舍利」
四全金彌陀像六寸一軀無垢淨光大陀羅尼經一」
卷安置石塔第二層以卜以此福田上資 神文大」
王 神睦太后 孝照大王代代聖庿枕涅盤之山」
坐菩提之樹 隆基大王壽共山河同久位與軋川」
等大千子具足七寶呈祥 王后體類月精命同劫」
數內外親屬長大玉樹茂實寶枝梵釋四王威德增」
明氣力自在天下太平恒轉法輪三塗勉難六趣受」
樂法界含靈俱成佛道 寺主沙門善倫 蘇判金」
順元金興宗特奉 敎旨僧令㑺僧令太韓奈麻阿」
摸韓舍季歷塔典僧惠岸僧心尙僧元覺僧玄昉韓」
舍一仁韓舍全極舍知朝陽舍知純節匠季生閼溫」
[출전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Ⅲ(1992)]
☞신목(神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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