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년의 연구

두고두고 음미하는 연려실기술 서문

by 日莫途遠 2026. 5. 7.
반응형

이광사가 아들 이긍익한테 써서 주었다는 연려실 편액 글씨

 

필자가 정말 좋아하는 연려실기술 서문이다. 필자 연구실의 당호 아닌 당호 삼아 한 켠에 둔 사진 편액에 부쳐 둔다. 



내가 열세 살 때에 선군先君을 모시고 자면서 꿈을 꾸었다. 꿈에 임금이 거둥하시는 것을 여러 아이와 길가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임금께서 갑자기 연輦을 머물게 하시고, 특별히 나를 불러 앞에 오라 하시더니, “시를 지을 줄 아는냐.” 하고 물으셨다.

“지을 줄 압니다.” 하고 답했더니 임금께서, “지어 올리라.”고 하셨다.

내가 “운韻을 내어 주소서.” 했더니, 임금께서 친히, “사斜ㆍ과過ㆍ화花 석 자를 넣어 지으라.” 하셨다.

잠깐동안 시를 생각하는데, 임금께서 “시가 되었느냐.” 물으셨다.

대답하기를, “시를 겨우 얽기는 했습니다마는 그 중에 두 자가 미정이어서 감히 아뢰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더니, 임금께서 “말하여 보라.” 하셨다.

곧 아뢰기를, “‘비가 맑은 티끌에 뿌리는데 연輦 길이 비꼈으니, 도성 사람들이 육룡六龍이 지나간다고 말하네. 초야에 있는 미천한 신하가 오히려 붓을 잡았으니, □□학사의 꽃을 부러워하지 아니하네.’ [雨泊淸塵輦路斜 都人傳說六龍過 微臣草野猶簪筆 不羨□□學士花] 이렇게 시를 지었는데, 끝 구 학사 위에 두 자를 놓지 못했습니다.” 했더니,

임금께서, “네가 놓지 못한 두 자는 ‘배란陪鑾’이란 두 자를 넣었으면 좋을 듯하니, 의당 ‘임금 모시는 학사의 꽃이 부럽지 않네.’가 될 것 같다.” 하셨다. 

내가 놀라 깨어 선군에게 고하였더니, 선군께서, “이것은 길몽이다.” 하셨고 내 생각에도 역시 훗날 어전에서 붓을 가질 징조인가 하였는데, 그 후 내가 궁하게 숨어 살게 된 뒤로는 전연 잊어 버렸다.

요즘에 와서 문득 생각하니, 초야잠필草野簪筆이란 글귀가 늙어서 궁하게 살면서 야사를 편집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어릴 적에 꿈으로 나타난 것인 듯하니, 실로 우연이 아니라 모든 일이 다 운명으로 미리 정해져서 그런 것일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때, 일찍이 유향劉向이 옛글을 교정할 적에, 태일선인太一仙人이 청려장靑藜杖에 불을 붙여 비춰 주던 고사를 사모하여, 선군으로부터 ‘연려실燃藜室’ 세 글자의 수필手筆을 받아 서실 벽에 붙여두고 그것을 각판하려다가 미처 못하였다.

친구 간에 전하기를, “그것이 선군 글씨 중에서도 가장 잘된 글씨라 하여 서로 다투어 모사模寫하여 가서 각판을 한 이도 많았고, 그것으로 자기의 호를 삼은 이도 있다.” 하니, 또한 우스운 일이다.

이 책이 이루어진 뒤에 드디어 《연려실기술》이라 이름짓는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