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우리가 보기엔 단순해 보이는 발견일 수도 있는 전차와 말에 대한 집착-.
그 이면에는 인더스 문명을 바라보는 인도인의 복잡한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전 회에 썼다.
이제 다시 우리 연구진이 발견한 라키가리 유적의 남녀 합장 무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지금까지 라키가리 유적은 무미건조할 정도로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혼자 묻힌 무덤만 줄줄이 보고 되었었는데 남자와 여자가 함께 발견되었다니 아마도 이 두 사람은 부부 (아니면 사실혼 관계의 연인) 였나보다. 아마 이것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가장 크게 자극한 부분 아닐까.
라키가리 유적을 파고 있을때 인도에는 "모헨조다로"라는 볼리우드 영화가 개봉되었었다. 이 영화는 인더스 문명을 주제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로 기획단계부터 많은 화제가 되었던 영화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영화가 별로 재미가 없어 크게 망한것으로 아는데 (손익분기점을 못 넘었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 라키가리 유적에서 발견된 남녀 합장 무덤을 보고 사람들은 이 영화의 러브라인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인도 볼리우드 영화의 흥행 보장 배우-. 리틱 로샨이 주인공으로 나선던 블록버스터 영화 "모헨조다로"-. 인도사회가 인더스 문명에 지닌 애착을 잘 보여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대로 영화는 망했다.
모헨조다로 영화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 남자 주인공 리틱 로샨은 모헨조다로 제사장 여인 (Pooja Hegde 분)와 사랑에 빠진다.
영화 "모헨조다로" 트레일러-.
영화 트레일러 중간에 "말 (horse)" 이 나오는데 이 장면을 두고 뒷 말이 많았다고 한다.
모헨조다로에 말이 돌아다니는 장면이야 말로 인도인들이 가장 보기 희구하는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배경 지식이 있는 사람이면 이 장면이 상당히 복선을 깔아 놓은 장면이라는 것을 직감 할 수 있다.
그런데 인도 사회에서 이 남녀 합장묘를 보고 열광 한 사람 중에는 이와는 다른 생각에서 출발 한 이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일까? 자 여기서 또 다른 영화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좀 오래된 영화이긴 한데. 이 영화를 아시는지? 1956년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쥘 베른 원작 "80일간의 세계일주"이다.
위 사진에서 왼쪽 사람이 멕시코 국민 배우 Cantinflas, 그리고 오른 쪽 사람이 Phileas Fogg 역을 맡은 David Niven이다.
50년대 잘 만든 영화답게 지금도 질리지 않고 촌스럽지 않다고 느끼면서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이 후에도 몇번 다시 촬영되었는데 아직까지도 1956년 버전을 능가하는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잘 알다시피 영국 부자 신사인 Fogg가 80일만에 전세계를 일주할 수 있다고 내기를 걸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소설과 영화에 보이는 이들의 여정은 다음과 같다.
이들은 런던을 떠나 수에즈운하를 지나 봄베이 (지금의 뭄바이)에서 캘커타 (지금의 콜카타)로 가는 인도 횡단 열차를 타려 했는데..
이 횡단 열차가 아직 전 노선 개통을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 일행이 선택한 방법은 코끼리 여행.
무려 2000 파운드나 되는 거액을 주고 구입한 코끼리를 타고 인도를 횡단하던 중에.. 이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들은 코끼리 여행 중 남편 장례식 화장 때 같이 불 타 죽어야 할 운명이 된 여인을 구출해 낸 것이다.
이 여인은 이름이 Aouda라고 하는데 원작에 의하면 파르시 계 여인이었다 (파르시는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페르시아=이란계 인도인이다.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파르시다. 이란계 이므로 서구적인 마스크로 미남 미녀가 많아 볼리우드 영화에는 파르시 배우들이 성공한 사람이 많다.)
인도 여인 Aouda를 구출하는 장면-. 가운데 남편 시신을 화장시키기 위해 쌓아둔 나무가 보인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순사하는 이 풍습을 "Sati"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셜리 맥클레인이 인도의 "Aouda"부인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건 인도사람이 아니고 백인인데? 하지만 이럴수도 있다. Aouda부인은 어차피 파르씨이기 때문에 이렇게 생겨도 상관없단다.
현역 볼리우드 파르씨 여배우-.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다룬 이 장면. 남편이 죽었을 때 아내가 따라 죽어 같이 화장하는 이 풍습을 "sati"라 하는데 이에 대한 해석도 무척 다양하다.
물론 아무리 이 풍습을 옹호하는 사람들이라도 남편이 죽어 아내가 따라 죽는 것을 강제로 시켰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세계 어느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발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이 "자발적"이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열녀문"을 연상하면 된다. "열녀"가 되기를 진심으로 갈구 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떠밀려서 졸지에 "열녀"가 된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인도의 "사티"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 열녀문. 남편이 죽었을때 아내가 따라 죽어주기를 바라는 "사티"의 심리는 사실 어찌 보면 역사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관찰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의 열녀문도 마찬가지. 인도의 "사티"는 단순히 야만적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심리가 내재했고 이것은 인도 사회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사티"는 인도 전통사회의 악습으로 독립 이전부터 공격의 표적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사티"를 통해 인도 전통사회를 비판하는 것은 그야말로 제국주의적인 시각에 불과한 오리엔탈리즘의 발로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절이라는 명분으로 희생시키는 악습이란 시각도 당연히 있다.
문제는 이 "sati"라는 풍습을 바라보는 시각이 인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게 된다는 것이다.
"Sati"라는 이 풍습은 도대체 얼마나 오래 된 것일까?
역사기록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대충 기원전에는 이미 존재했다고 한다.
남편과 함께 순사하는 어느 "정숙한 부인"의 Sati
적어도 앞에서 언급한 "베다 시대"에는 Sati가 존재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자 그렇다면 "인더스 문명 시대"에는 어떨까? 이때도 "Sati"가 존재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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