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절 재산이 탐나 벌인 척불정책

by 초야잠필 2024. 9. 20.
반응형

물론 성리학에는 척불적 기조가 있다. 

그런데-. 그 척불적 기조의 정도가 문제겠는데, 

당장 성리학자의 원류 중 하나로 척불론의 원조격이 될 한유만 해도 논불골표論佛骨表 등을 보면,

부처의 말을 다 믿지 말고 이를 중앙 정치판에 끌고 오지 말라는 이야기지

절 집을 뺏고 재산 몰수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조선에 들어오기 이전의 송-원대 성리학자들 주장 어디에도 절집 재산 빼앗고 박해하라는 소리는 없다.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네 번의 폐불운동이 있어 불교를 탄압했는데

정작 성리학이 흥한 후 북송대 이후에는 제대로 된 폐불운동이 일어난 바 없다. 

앞에서도 한 번 쓴 것 같은데 

여말선초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이해하는 성리학 수준은 그다지 깊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주자의 사서집주 주석도 완전히 이해 못한 수준이었을 것이라 보는데 

그 와중에 유독 폐불 척불에 진심이었던 이유는 

딱 하나. 

이 척불운동의 이유가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절집 재산을 빼앗기 위한 운동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말선초 척불운동을 사상 투쟁으로 보는 시각에는 반대다. 

당장 불씨잡변이니 하는 여말선초 조선의 성리학자들의 배불론을 보면 그야말로 한유의 불골표를 간신히 베낀 수준이라

16세기 이후 조선의 성리학 수준에 비할 바가 아닌 상태였다. 

그렇다면 이유는 딱 한 가지. 

성리학에 진심이어서가 아니라 절집 재산 뺏는데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왜 이렇게 절집 재산 뺏는데 열심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마도 사전 혁파와 일맥상통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남원 실상사와 그 주변. 이것이 고려시대로 돌아가면 이 주변은 실상 실상사 제국이었다. 그 제국의 절대 기반은 토지였다. 이를 조선의 새로운 집권자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편집자 보탬)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