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 6대 임금으로 재위기간은 407~421년. 김토왕(金吐王) 또는 김질(金叱)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이시품왕(伊尸品王)이고 어머니는 정신(貞信)이며, 도녕(道寧) 대아간(大阿干) 딸 복수(福壽)를 부인으로 맞아 7대 임금 취희(吹希)를 낳았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6대 좌지왕(坐知王)은 김토왕(金吐王)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이품(伊品)이며 어머니는 정신(貞信)이다. 정미년에 즉위해 14년을 다스렸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7대 취희왕(吹希王)은 김희(金喜)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좌지왕(坐知王)이며 어머니는 복수(福壽)다. 신유년에 즉위해 30년을 다스렸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이시품왕(伊尸品王). 김씨(金氏). 영화(永和) 2년에 즉위. 치세는 62년, 의희(義熙) 3년 정미(丁未; 407) 4월10일에 죽음. 왕비는 사농경(司農卿) 극충(克忠)의 딸 정신(貞信)으로, 왕자 좌지(坐知)를 낳음. 좌지왕(坐知王). 김질(金叱)이라고도 함. 의희(義熙) 3년(407)에 즉위. 용녀(傭女)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의 무리를 관리로 등용하니 국내가 시끄러웠다. 계림(鷄林)이 꾀를 써서 치려하므로, 박원도(朴元道)라는 신하가 간했다. “유초(遺草)를 보고 또 보아도 역시 털이 나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하늘이 망하고 땅이 꺼지면 사람이 어느 곳에서 보전하오리까. 또 점쟁이가 점을 쳐서 해괘(解卦)를 얻었는데 그 괘사(卦辭)에 '소인(小人)을 없애면 군자(君子)가 와서 도울 것이다'했으니 왕께선 역(易)의 괘를 살피시옵소서.” 이에 왕은 사과하여 옳다고 하고 용녀를 내쳐서 하산도(荷山島)로 귀양 보내고, 정치를 고쳐 행하여 길이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렸다. 치세는 15년으로, 영초(永初) 2년 신유(辛酉; 421) 4월 12일에 죽음. 왕비는 도녕(道寧) 대아간(大阿干)의 딸 복수(福壽)로, 아들 취희(吹希)를 낳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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