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서도 그런 줄로 안다. 개막 초창기 공연은 아무래도 아귀를 맞춰나가는 과정이라 삐걱거림이 있기 마련이라 초반 공연 몇 차례 소진하고 난 다음 공연이 관객한테 안정감을 그만큼 많이 준다고 말이다.
책 역시 초판 1쇄보다는 2쇄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판본이다. 오타니 뭐니 하는 것들을 아무리 세밀히 살핀다 하지만, 없을 수가 없다. 저자가 가장 애착을 지니고 교정할 때도 바로 1쇄를 소진하고 2쇄로 넘어갈 때다. 3쇄 이후는 듬성듬성 하고 만다. 이걸 아는 사람들은 1쇄가 소진하고 2쇄를 기다리기도 한다.
한데 이리 되면 문제가 생긴다. 1쇄를 소진해야 하는데, 그 동력을 잃는다.
나아가 요샌 출판이 아니라 인쇄를 하는 일이 많아, 독자를 생각지 않고 제 만족을 위해, 제 업적 과시를 위해 책을 찍는 일도 적지 않거니와, 출판사 역시 이 책은 생명력 없다 해서 그리 처리하는 일이 제법이다.
책을 내보지 않거나, 처음 내는 사람들은 1쇄 소진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모른다.
책..친하다 해서 공짜로 받을 생각 말고, 많이 많이 사서 주변 사람들한테 선물해라.
친할수록 책 사 줘야 하며, 그것도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 사야 한다. 물론 그럴 처지나 여유가 되지 않는 사람들까지 그리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웬간한 직장 지위 갖춘 사람이면 그리 해야 한다. 그거 얼마 하지도 않는다.
출판산업이 죽어가는 이유 중에 증정 전통도 무시못한다. 나 역시 썩 그렇지 않다고 말은 하지 않으나, 적어도 상업용 출판물을 보내달라 저자한테 부탁하지 않은지 오래된다.
"책 좀 보내주라"는 말 이젠 함부로 하지도 않을 뿐더러 함부로 할 수도 없다.
저자 사인본은 내가 그 사람 책을 사서 그 사람한테 받아야 한다.
(2017. 12. 23)
***
내가 책을 요구할 때가 딱 한 번 있는데, 내가 홍보해서 책 좀 팔렸다고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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