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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서 사범대학 캠퍼스에 옛 무덤에서 2천년 전 한나라 시대 육박六博 바둑판 2점 발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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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京报, 2026년 7월 17일 16:49) 육박六博은 진한 시대에 큰 인기를 누린 '국민 보드게임'으로, 중국 보드게임 시조로 간주한다. 

최근 섬서성고고연구원 발굴 성과에 의하면 섬서 사범대학 장안 캠퍼스长安校区에 확인한 한나라 무덤에서 기하학적 무늬 또는 일반 사각형 블록으로 만든 육박 바둑판六博棋盘이 발견됐다.

이번 발견은 한나라 시대 육박 게임에 대한 자료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

섬서 사범대학 장안 캠퍼스 M4호에서 발굴된 육박 바둑판 사진 제공: 섬서성고고연구원


2022년 4월, 섬서 사범대학교 장안 캠퍼스 남동쪽 부지에서 학생 기숙사 건설을 위해 섬서성고고연구원은 발굴 조사를 했다.

총 25개 무덤과 2개의 재 구덩이灰坑가 발굴되었으며, 그중 10개 한나라 무덤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훼손되지 않은 상태였다.

한나라 무덤은 크게 수직 수직 무덤, 경사 수직 무덤, 그리고 벽돌로 된 묘실[竖穴墓道土洞墓、斜坡墓道土洞墓、竖穴墓道砖室墓]의 세 가지 구조를 한다.

발굴된 유물은 도기, 청동기, 철기, 그리고 육박판 등 총 130점이다.

육박판은 M4호와 M17호라는 이름을 부여한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섬서 사범대학 장안 캠퍼스 M17 고분 발굴 육박판. (사진 제공: 섬서성고고연구원)

 
육박은 주사위 던지기와 바둑을 결합한 고대 중국 보드 게임이다.

전설에 따르면 하夏 왕조 신하 오조乌曹가 만들었다고 한다.

전국시대 역사서인 『세본世本』에는 "오조가 육박을 발명하고 요尧가 바둑围棋을 발명했으며, 단丹朱주가 바둑에 능했다"라고 했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육박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널리 인기를 얻으며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락이 되었다.

이백李白은 "육박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복을 가져다주고, 금판을 한 번 던지면 만문이 열린다[六博争雄好彩来,金盘一掷万人开]"라는 시를 지었다.

1986년, 푸주유傅举有의 논문 「진한 시대의 도박 도구, 게임, 그리고 무늬 새김 거울에 대하여[论秦汉时期的博具、博戏兼及博局纹镜]」에서 육박 발명 시기가 상나라 시대보다 훨씬 이전으로 매우 이르다고 지적했다.

육박은 또한 시대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변화했다.

진한 시대 도박 도구는 주로 바둑판, 바둑말, 그리고 젓가락이나 바둑추[局、棋、箸或焭组]로 구성되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육박판은 대부분 나무로 만들었으며, 거의 정사각형 모양에 칠을 한 밑면과 바둑말을 움직이는 12개 곡선형 'T'자, 'L'자, 'V'자 모양 궤적이 있었다.

중앙에는 정사각형 테두리가 있었고, 테두리 네 모서리에는 점, 꽃, 새와 같은 무늬가 새겨졌다.

육박판에 나타나는 무늬. 푸주유傅举有 논문 「진한 시대의 도박 도구, 게임, 그리고 도박 무늬 새김 거울에 대하여」 스크린샷

 
논문 「육박의 진화」에서는 저자가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육박 게임판을 정리하고 그 문양을 분석해 연대순으로 비교함으로써 육박의 진화를 연구했다고 언급한다.

저자는 'T'자, 'L'자, 'V'자 문양이 서한 시대에 발전한 육박 게임판 양식을 나타내며, 전국시대 말기 이후에야 등장했다고 결론짓는다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육박 인기에 힘입어 게임판 문양[박국문博局纹, 규칙 문양规矩纹이라고도 함)이 청동 거울에도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는 한나라 청동 거울 대표 장식 문양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청동 거울은 뒷면 중앙에 정사각형 격자가 있고, 네 변 중앙에는 'T'자 모양, 그 맞은편에는 'L'자 모양이 있다.

정사각형 네 모서리는 'V'자 모양이며, 그 사이에 용, 풀잎, 사대자 문양이 배치되어 마치 작은 공간에 완전한 게임판을 압축해 놓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T", "L", "V" 문양은 육박 바둑판의 곡선에서 발전된 예술적인 형태로, 한나라 시대 육박 인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광동성 광주 남월南越 문왕文王 무덤 동이실东耳室에서 육박 바둑말 한 세트가 발굴되었다.

칠을 한 나무 바둑판은 부식되었지만 옥, 수정, 상아로 만든 "호화로운 바둑말" 30개가 온전히 남았다.

바둑말에 옥과 수정이 사용된 것은 고고학적 발견으로는 처음이다.

이 바둑말 세트는 현재 광저우 남월왕박물원南越王博物院에 있다.

이 "국민 보드게임"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남월왕박물원에 따르면, 완전한 육박 세트는 바둑판棋局(곡선이 새겨진 판), 바둑말棋子(각 진영당 6개, 두 가지 색깔로 나뉘며, 각 진영에는 부엉이 모양 장수 하나와 흩어진 말 다섯 개가 있음), 젓가락箸(대나무 또는 나무로 만든 던지는 도구 6개), 그리고 승리 표시용 칩采으로 구성된다.

게임을 할 때는 젓가락을 바둑판에 던지고, 결과에 따라 이동 횟수가 결정되며, 곡선 경로를 따라 바둑말을 움직인다. [이거 보면 윷놀이가 저에서 비롯한 듯하다.]

육박의 결과는 주사위 굴림의 무작위성에 크게 좌우된다(반고의 《역지弈旨》에서 "육박의 승패는 주사위 굴림에 달렸다博悬于投"라고 언급됨).

따라서 육박은 본질적으로 "주사위로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이며, "육박"이라는 이름은 핵심 소품인 "주사위 6개"에서 유래했다.

전국시대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육박 게임 말과 주사위가 산동성 곡부의 노나라 고대 도시 유적山东曲阜鲁国故城遗址에서 발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후이성 차오후 방왕강 한묘 1호[安徽巢湖放王岗一号汉墓]에서 육박 게임판이 발굴되었고, 저장성 안지의 무복 초묘浙江安吉五福楚墓에서도 육박 게임판과 게임말이 발굴되었으며, 후베이성 운몽의 수호지 진묘湖北云梦睡虎地秦墓에서도 육박 게임 세트 두 세트가 발굴되었다.

值班编辑 王丹妮 实习生 沈玥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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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협주에서도 내가 언급했듯이 한국 윷놀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 육박 변형이다.

저 게임 규칙은 대략일 뿐이며 자세한 건 모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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