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나치 SS가 1930년대 이념 캠페인을 강화하기 위해 중세 여성 유해를 하인리히 1세 것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새로운 증거가 밝혀졌다.
중부 독일 선사시대 연보(Jahresschrift für Mitteldeutsche Vorgeschichte)에 발표된 이 연구는 독일 크베들린부르크Quedlinburg 소재 세르바티우스 교회St. Servatius Church에서 SS 지도자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가 명령한 발굴과 관련해 그동안 간과된 기록 문서를 분석했다.
역사학자들은 힘러가 이 교회를 나치가 제3제국Third Reich의 상징적 선구자로 묘사한 10세기 군주 하인리히 1세에게 헌정된 국가적 성지로 만들고자 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알고는 있었다.
나치 정권은 하인리히 1세 유산을 이용해 민족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이념을 강화하고, 그를 독일 제국의 창시자이자 팽창주의적 야망의 모델로 내세웠다.
1937년, SS는 교회 지하 발굴 후 하인리히 유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발굴 보고서가 분실된 것으로 여겨지면서 일부 연구자는 발굴이 실제로 보고된 대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독일 연방 기록 보관소German Federal Archives에서 힘러 지시를 받아 발굴을 이끈 고고학자 롤프 회네Rolf Höhne와 그의 측근 카를 시르비츠Karl Schirwitz가 작성한 그동안 방치된 원고와 보고서 초안이 발견되었다.
이 문서들은 발굴 과정과 이후 유해 처리 과정에 대한 최초의 상세한 기록을 제공한다.
조사 핵심은 교회 지하 묘실crypt 북쪽 구역 무덤에서 발견된 파편화한 두개골이었다.
이 두개골은 해부학자 아우구스트 히르트August Hirt가 조사했는데, 그는 훗날 나치의 의료 범죄에 연루되어 악명을 떨치게 된다.
히르트는 두개골 모형을 만들고 치수를 측정하여, 자신의 연구 결과를 나치의 인종 이론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로 제시했다.
그는 두개골이 "주로 북유럽 계통"이며 노인 것이라고 결론지었지만, 생물학적 성별은 확실하게 판단할 수 없었다.
핀과 머리 장식 조각이 발견된 것을 토대로 회네는 이 유해가 하인리히 1세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는 이러한 결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발굴 기록과 남아 있는 사진들을 재검토한 결과, 두개골에서 발견된 직물, 가죽 조각, 금속 고리들은 모두 합쳐 매장용 모자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으며, 핀 또한 왕실 유물이 아닌 바느질 핀으로 밝혀졌다.
무덤에서 발견된 나무판 역시 10세기 왕실 매장이 아닌 중세 후기 또는 근대 초기 매장 관습에 부합한다.
이 연구는 또한 발견된 유골의 골격 특징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는 점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이 유골이 1533년에 사망해 19세기 후반까지 묘비에 가려져 있던 수녀원장 안나 폰 타우텐부르크Anna von Tautenburg 것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새로운 발굴과 고대 DNA 분석 없이는 확정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는 이러한 해석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만약 이 해석이 맞다면, 이는 나치 친위대(SS)가 중세 여성 수도자 유골을 하인리히 1세로 바꿔 신화화하고 나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전략 핵심으로 활용했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는 또한 나치 정권이 고고학과 인류학을 어떻게 조작해 인종주의적 신념과 정치 선전에 과학적 정당성을 부여했는지를 보여준다.
서기 919년부터 936년 사망할 때까지 동프랑크 East Francia 왕국을 통치한 하인리히 1세는 작센Saxony 지방 권력을 공고히 하고 오토 왕조Ottonian dynasty 기반을 마련한 초기 중세 시대 핵심 군주로 간주된다.
그러나 현대 학계에서는 나치 이데올로기를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신성 로마 제국Holy Roman Empire 형성을 한 군주 업적이 아닌 점진적인 역사적 과정으로 간주한다.
(헤더 이미지 출처: 작센안할트 주 문화유산 관리 및 고고학 사무소)
Sources : IDW – Donat Wehner/Andreas Stahl/Jörg Orschiedt, King Henry I († July 2, 936) and the SS’s “skull cult”. Yearbook for Central German Prehistory 100, 2, 2026. https://doi.org/10.11588/jsmv.2026.2.116367
***
저 하인리히 1세 아들이 그 유명한 오토 대제다. 내가 세계사를 배울 적에는 신성로마제국은 하인리히 1세가 아니라 오토 대제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흔히 고고학과 정치권력의 야합을 이야기할 때 저와 같은 나치 사례를 들면서 지금의 고고학은 아닌듯이 포장하지만 천만에.
고고학은 태생 자체가 어용이며 작금 한국고고학 역시 모든 존재기반 자체가 국가의 통제와 구속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제도 자체를 고고학도 스스로 자초하며 환영했다는 점에서 하등 다를 바 없다.
틈만 나면 국가권력 기대어 사적을 만들려 하고 어케든 정부 기관장 자리 혹은 문화재위원 자리 하나 차지하려 혈안이 된 모습이 어찌 어용 아니라 하겠는가?
한국고고학 지상 명령 중 하나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초연이며 그 지름은 호기심에 바탕한 줄기찬 연구의욕밖에 없다.
연구한다는 놈이 언제 한가롭게 자리를 탐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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