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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숨기고자 땅에 묻었다가 끝내 찾지 못한 로마의 보물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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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개 로마 동전 매장지가 왜 발견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

 

1911년 영국 코브리지Corbridge에서 발견된 청동 항아리 안에 들어있던 로마 금화 아우레우스aureus coins 160개와, 내용물 가치를 숨기기 위해 항아리 목 부분에 넣어둔 청동 동전 두 개. 서기 160년경으로 추정. 영국 박물관 소장. 사진 제공: BabelStone, CC BY-SA 3.0


금속 탐지기와 고고학자들이 발견하기 전까지, 수천 개 로마 동전 매장지가 땅속으로 사라졌다.

많은 매장지는 임시 은닉 장소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 주인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사라진 주인들은 전쟁, 침략 또는 재난에 휘말린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이 연구는 중요한 차이점을 지적한다.

사람들이 돈을 묻은 이유와 아무도 그것을 찾지 못한 이유는 매우 달랐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현재 18,200개 이상 매장 유적과 750만 개 이상 로마 동전을 포함하는 로마 제국 동전 매장 유적 데이터베이스를 연구했다.

의례적인 매장이나 일상적인 손실이 아닌 숨긴 저축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연구진은 100개에서 10,000개 사이 동전이 들어 있는 매장 유적을 선정했다.

또한, 동전 가치 하락으로 사람들의 화폐 사용 방식이 바뀌기 전인 서기 1세기부터 3세기까지의 시기로 연구 범위를 한정했다.

사람들이 동전을 묻는 이유는 다양했다.

불안정한 시기에 처한 상인은 수입을 숨기기 위해, 가족은 침략으로부터 저축을 보호하기 위해, 또 다른 이들은 로마 화폐 가치가 떨어진 후 오래된 은화를 보관하기 위해 동전을 묻었다.

어떤 매장은 종교적 또는 장례 의식을 위한 것이었으며, 애초에 되찾을 의도가 없었다.

이번 연구는 규모, 용기, 매장 방식 등을 통해 주인이 다시 돌아올 것을 기대한 것으로 보이는 매장 유적에 집중했다.


1993년 9월 독일 트리어Trier에서 발견된 트리어 금화 보물Trier Gold Hoard 매장지에는 2,518개 로마 금화(무게 18.5kg)가 들어 있었다. 이 매장지는 트리어 라인란트 주립 박물관Rheinisches Landesmuseum Trier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 제공: Th. Zühmer; CC BY-SA 3.0)


연구진은 이러한 매장지들의 발견 시기를 알려진 군사 작전 및 기타 재해 발생 시기와 비교했다.

그 결과 명확한 패턴이 나타났다.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매장지가 대량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예로, 서기 9년 게르마니아에서 로마 군단 3개가 괴멸된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Battle of the Teutoburg Forest가 있다.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제작된 지도에는 전투가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칼크리제Kalkriese 근처에 매장지가 집중되어 있는 것이 나타난다.

이처럼 묻힌 금화들은 많은 사람이 살아남지 못하고 저축한 돈을 되찾지 못한 지역과 관련이 깊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서기 20년에서 60년 사이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동전들이 남동부 지역에 집중되는데, 이 지역은 이후 부족 전쟁, 서기 43년 로마의 침공, 그리고 부디카의 반란Boudica’s revolt으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이 연구는 각각의 동전이 특정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고 단정짓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발견들이 한 지역에 걸쳐 오랫동안 공포와 폭력이 만연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다른 지도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기 70년에서 90년 사이에 묻힌 동전들은 영국에서 거의 사라진 반면, 베수비오 산 주변에서는 새로운 동전들이 발견된다.

연구진은 이 동전들이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폼페이와 인근 마을들이 화산재에 묻힌 것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영국 오스웨스트리Oswestry에서 발견된 로마 동전 더미 (버밍엄 박물관 소장). 사진 제공: The Portable Antiquities Scheme (PAS), CC BY-SA 4.0


이러한 양상은 다뉴브 강 유역에서도 반복한다.

도미티아누스와 트라얀 황제 치하 다키아 전쟁Dacian Wars 동안, 국경 지대와 다키아 수도 사르미제게투사Sarmizegetusa 주변에서 많은 보물이 발견되었다.

이후 3세기 중반 카르피Carpic 족과 고트Gothic 족 공격으로 발칸 반도 전역에 걸쳐 또 다른 미발견 보물들이 퍼져나갔다.

가장 많은 보물이 집중적으로 발견된 시기는 3세기 위기Crisis of the Third Century의 시대다.

서기 253년에서 268년 사이, 로마 영토는 갈리아에서 소아시아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반복적인 침략, 내전, 약탈을 겪었다.

지도에는 이 지역들에서 발견된 수백 곳 미발견 보물이 나타나 있다.

저자들은 고고학자들이 두 가지 질문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사람들은 왜 돈을 묻었을까? 둘째, 왜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을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종종 재산을 보존하거나 귀중품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두 번째 질문은 죽음, 강제 도피, 기억 상실, 지형 변화, 또는 대규모 전쟁과 같은 이유를 제시한다.

이처럼 잊힌 보물들은 고향에 도착하기도 전에 계획이 좌절된 사람들 이야기를 기록한다.


Publication: Cristian Găzdac, Adrian-Daniel Stan, Why did they not recover the hoards? Insecurity in the Roman Empire. Journal of Ancient History and Archaeology, 13(1). https://doi.org/10.14795/jaha.13.1.2026.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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