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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선사시대 신석기 중국 남북을 말아드신 왕명달王明达과 곽대순郭大顺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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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26년 7월 북경에서 중국 고고학 학술대회가 열렸으니, 그 자리를 함께한 왕명달王明达Wang Mingda(왕밍다, 왼쪽)과 곽대순郭大顺Guo Dashun[궈다순] 두 뇐네 근황이라 해서 중국 언론에서 보인다. 

뭐 원로대접한다 해서 저리했겠고, 저런 풍광은 한국 학술대회장에서도 흔하거니와, 저리 지정 좌석을 해 놓으면, 것도 대접한다고 맨 앞줄에다가 박아두면, 뇐네들이 쉬 움직이지 못한다.

저 연세가 되면 걸핏하면 화장실을 가서 오줌을 눠야 하고, 또 애연가라면 쉴새없이 들락거리며 빨아야 하는데, 실은 여간 고역이 아닐 터. 

저 두 사람은 이제 현역에서는 거의 은퇴하고선 원로 대접을 받으며 여생을 즐기어니와, 중국 선사고고학, 특히 신석기 고고학에서는 각각 중국 기준 동북 지역과 장강 유역을 말아먹었으니 그 지역을 대표하는 양저문화良渚文化와 홍산문화红山文化를 각기 대표하는 대가로 통용한다.

두 사람은 그런 까닭에 활동 무대가 다르다. 왕명달이 절강성문물고고연구소浙江省文物考古研究所를 무대로 자신의 장강 왕국을 개척했다면 곽대순은 근거지가 요녕성문물고고연구소辽宁省文物考古研究所다.

왕명달은 생년이 쉬 보이지 않는 반면, 한국 학계에도 널리 알려진 곽대순은 1938년생이니 이제 곧 아흔이다. 나이에 비해 굉장한 건강을 자랑하는 듯한 근황이다. 곽대순이 왕명달한테는 사형师兄이라는 언급이 보이니, 연배는 곽대순이 높지 않나 한다. 

왕명달王明达을 일러 절강성문물고고연구소 자심연구원资深研究员이라 현직으로 소개하는데, 자심연구원?

뭐 우리로 치면 명예 혹은 고문 정도 아닌가 싶지만, 저 어감으로 볼 때는 단순한 그 이상의 위상을 준 듯하다. 

왕명달은 양주문화 연구 2세대 핵심으로 통한다. 그에 걸맞게 이 문화 연구에 40년 이상을 헌신했다니 그런 말을 들을 법하지 않겠는가?

특히 1986년에는 반산유지反山遗址 발굴에서 양저문화 최고위급 묘장墓葬인 반산 12호묘[反山12号墓]를 발굴해 "옥종왕玉琮王"을 비롯한 물경 1,200점 이상에 달하는 장례 유물(세트)을 발굴했다.

고고조사 방법론 측면에서는 "현공조작법悬空操作法"과 같은 필드워크 조사 방식을 도입했다. [이 조사방법 실체는 나로선 찾아봐야 한다.]

양저 유적 종합 보존 철학을 정립하고 그 실천 계획을 수립했다.

오가부 옥종 반제품[吴家埠玉琮半成品] 연구(1997-2003)를 통해 양저문화 옥 생산 기술을 획기적으로 구명했다.

요컨대 양주문화 하면 왕명달이고, 왕명달 하면 양주문화가 되는 마스코트가 되겠다. 

곽대순은 근자 홍산문화 해체기 그 문화 흔적이 발견됐다 해서 중국 고고학에서는 난리가 난 하북성 장가구张家口 선화宣化 출신이다.

하도 홍산문화에 천착하는 바람에 중국 고고학에서는 "홍산문화의 선구자"로 평가되며 지금도 요녕성문물고고학연구원 명예원장이자 요녕성 문물보호전문가팀[辽宁省文物保护专家组] 단장을 맡고 있다.

1958년 북경대학교 역사학과에 들어가 엄문명严文明을 비롯한 선생들한테서 고고학을 배우고 1962년 학부 졸업 뒤에는 소병기苏秉琦가 지도하는 대학원 과정에 입학해 1965년 신석기고고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8년 요녕성박물관에 입사하면서 동북지역 고고학으로 정착한다. 동산취东山嘴와 우하량牛河梁 같은 홍산문화 발굴을 주도한다.

이때 홍산문화 옥반지玉环를 발견하고 뉴허량 유적 대규모 발굴을 추진한다.

그는 "뉴허량이 홍산문화 중심"이라는 학문적 견해를 제시하고 홍산 옥기물 제작 특징을 "정교한 재료와 뛰어난 세공 기술"로 요약했다.

대학이 아닌 관료의 길을 선택한 그는 랴오닝성 문화청 부청장과 랴오닝성 문물고고연구소 명예소장을 역임했다.

그의 학문은 홍산문화를 중심으로 옥문화와 문명 기원론을 아우르며, "지속적인 문명"과 "매장에는 오직 옥만 사용한다"와 같은 중요한 개념을 제시했다.

동산취 제단을 "중국 최초의 제단"으로 규정하면서 이것이 베이징 천단 양식까지 이어진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조보구 유지赵宝沟文化 출토 유물을 "봉황 도기 잔陶凤杯"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주제 혹은 현장을 잘 선택하고, 강단이 아닌 관료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곽대순학을 완성한 케이스라 봐야 한다. 

아 참, 지금 홍산문화할 때 그 마스코트로 통용하는 우락부락 험상궂음 여신상은 바로 곽대순이 우하량에서 발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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