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유적은 초기 청동 생산 및 제련에 대한 학계 공백을 메운다.
서오벽 유적에서는 구리 제련 도구들이 발굴되었다.
서오벽 유적 구리 제련 작업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청동이 아닌 순동이었으며, 이는 이 지역이 주로 순동 제련에 종사하는 정착지였음을 시사한다.
또한, 소형 도구들도 이곳이 생산지였음을 입증한다.
이는 초기 청동 생산 및 제련에 대한 학계 이해를 넓혀준다.
하夏와 상商 왕조 중심부에서 전문적인 구리 제련 유적이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이는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얼리터우[이리두二里头] 시대 숯가마[목탄요木炭窑], 얼리강[이리강二里岗] 하부 시대 구리 제련로, 그리고 얼리터우와 얼리강 시대 기타 구리 제련 유물들은 기존에 발견된 구리 제련 유적들과 함께 서오벽 유적에 대한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이 유적은 고도로 전문화한 고도의 구리 제련 작업장을 보여주며, 초기 구리 제련 기술과 생산 방식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는 물론, 하 왕조와 상 왕조의 흥망성쇠와 그들이 전략적 자원으로서 구리를 통제, 개발 및 활용한 관계를 탐구하는 데에도 귀중한 물증을 제공한다.
이상은 2020년 발굴 성과다.
서오벽 유지 위치는 아래와 같다. 딱 황하 변이다.
중국 중원 지역 금속 문명 시작 시점과 그 무렵 그 흔적을 보여주는 증거는 거의 없지 않았나 싶은데, 그 증좌를 마침내 찾은 모양이다.
금속 문명 발달사 측면을 보면 순동에서 청동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이는데, 역시나 중국 역시 순동에서 시작했음이 적어도 이 발굴을 통해 보면 분명한 듯하다.
한반도는 청동기 시작이 굉장히 늦기는 한 가운데, 극히 일부 지역에서 극히 미량으로 청동 흔적이 찔끔 나오기는 하는데, 정선 아우라지 유적에서 대략 기원전 10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쥐꼬리 만한 구리 유물이 나온 적 있거니와, 분석에서 청동이 아닌 순동으로 나왔다고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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