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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육안 판정임을 전제로 삼고 금석문 시대를 판별할 때 물론 서체가 중요하다.
다만 그것이 절대 준거임은 있을 수 없으니, 후대라 해서 선대 서체를 활용하지 아니하는 것도 아니며 서체는 참고사항일뿐이다.
저것이 광개토왕비 서체?
그건 그렇게 보고자 하는 놈들 생각 일루전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저 재료랑 비석을 가공하는 방식.
언뜻 화강암 종류 같고, 무엇보다 글씨를 쓸 면을 박박 문질러서 반질반질하게 만들었다.
저런 기법, 아무리 빨라도 삼국시대 말기 이전에는 등장할 수 없다.
근거 대봐!
삼국시대 말기 이전 금석문으로 저런 식으로 만든 거 있는지?
백제 멸망기에 만들었다고 보는 사택지적비 정도가 계우 비교할 만하고 신라의 경우 통일 직전 아마도 태종무열왕 시대 무렵에는 저런 식으로 비석을 제작하는 단계로 들어갔다.
간단히 말해 저런 식으로 돌을 깎아 비석을 만드는 전통은 7세기 이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저것이 광개토왕 시절 무렵?
까는 소리 좀 그만해라.

가장 엇비슷한 게 일단은 흥덕왕릉 비편이다.
이는 육안 관찰로는 최종 판단을 할 수 없고, 암석 재질 분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딱 봐도 흥덕왕릉 시대잖아?
저 비석 신라시대인가조차도 나는 단안할 수 없다고 보며, 고려시대 혹은 조선시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
다만, 저 제작 방식과 재질로 볼 적에 때려죽어도 삼국시대 말기, 구체로는 7세기 이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현재로서 가장 가능성 있는 시대는 8~9세기 어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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