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관산성전투3 죽어도 노비 손에는 죽을 수 없다는 백제 명농왕明穠王 일본서기 흠명 15년 조에는 유명한 성왕이 승하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왕이 아들 위덕왕을 찾아 가다 매복에 걸려 죽는 장면이다.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부분이 두 군데 있다. 1. 고도가 말하기를 "우리나라 법에는 맹약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할지라도..."라는 부분이 있다. 성왕이 맹약을 어겼다는 뜻일 터다. 무슨 맹약일까? 이미 앞에 한 번 쓴 바 있다. 백제는 신라와 공수동맹을 맺었지만 가야방면으로는 끊임없이 가야와 연계하여 신라를 견제하려 했다. 우리가 모르는 적대행위가 또 있었을 수 있다. 아무튼 문맥으로 보면, 적어도 신라로 보면 한강 탈취 명분은 "백제가 맹약을 어겼기 때문"인 셈이다. 그 명분 역시 모든 정치판 명분이 그러하듯 구실에 불과했겠지만. 2. 고도가 명왕을 사로잡아 "왕의 머리를 베.. 2022. 12. 15. 성왕은 진흥왕에게 "배신"당한 것이 아니다 성왕이 죽는 장면은 장렬하여 읽는 사람에게 비통함을 준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찾아보기 위해) 가다가 신라 매복에 걸려 승하하게 되었는데 그 장면은 사서에도 자세하니 여기 따로 쓰지는 않겠다. 성왕은 일본측 사료에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은 매우 명민한 명군으로 알려져 있는데, 성왕의 불행이라면 불행은 당시 명군은 백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성왕은 흔히 진흥왕에게 "뒤통수를 맞아" 한강유역을 상실했다고 생각하는데 일본 측 사료를 읽어보면 그게 아니다. 아래는 흠명 5년 (544년) 기사이다. (동북아역사재단). 신라가 백제의 한강유역을 뺏어 영유한 것은 553년의 일이니 소위 나제동맹이 깨지기 11년 전의 일이다. 성명왕이 “임나국은 우리 백제와 예부터 지금까지 자제와 같이 되겠다고 약속하였다.. 2022. 12. 13. 도도(都刀) 신라 진흥왕 15년(553) 백제와의 관산성 전투에 김무력이 이끄는 신라군 휘하에 소속되어 출전한 삼년산군 고간으로, 백제 성왕을 사로잡아 처형하는 전과를 올렸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4 진흥왕 : 15년(553) 가을 7월에…백제왕 명농[성왕]이 가량(加良)과 함께 관산성(管山城)을 공격해 왔다. 군주 각간 우덕(于德)과 이찬 탐지(耽知) 등이 맞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했다. 신주(新州) 군주(軍主) 김무력(金武力)이 주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함에 비장(裨將)인 삼년산군(三年山郡) 고간(高干) 도도(都刀)가 급히 쳐서 백제 왕을 죽였다. 이에 모든 군사가 승세를 타고 크게 이겨 좌평(佐平) 네 명과 군사 2만 9천6백 명을 목베니 한 마리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2018. 6. 12.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