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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3

"윤관은 왜 실패했는가"에서 출발한 세종 이도의 음모 정부가 편찬한 조선 왕대별 공식 편년체 역사인 조선왕조실록 중 유독 세종실록에는 지리지가 붙어있다. 세종은 왜 이 지리지를 편찬했을까? 아니, 세종시대를 정리하며 조선왕조는 왜 이 지리를 굳이 넣었을까? 단순히 조선왕조가 개창하고서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 그것을 정비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그래서 지리지 말고도 다른 志들을 편찬했다고? 나는 한국 역사상 가장 영토 야욕이 컸으며, 이를 위해서는 음모를 마다 않은 세종한테서 그 음모술수를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어떤 음모인가? 목적을 위해서는 그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명분을 동반하는 각본에 기반했다. 간단히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 논리를 만들었다. 지리지는 중국이 치고 들어올 때를 대비해 짠 시나리오다. 북방으로 진군해 4군6.. 2022. 12. 26.
후쿠오카(福岡) 모토오카(元岡) 고분군 G6호분 철제대도(鐵製大刀)를 찾아서 2011년 10월 6일 연합뉴스에서 송고한 내 기사다. 후쿠오카시(福岡市) 니시구(西區) 모토오카(元岡) 고분군 G6호분 철제대도(鐵製大刀) 출토 소식을 접하고, 현지를 탐방하고 그것을 정리한 르포 기사인데, 그에 대해서는 내가 별도로 정리한 글이 따로 있으므로, 그것은 추후 갈무리해서 공개하기로 한다. 이 르포 기사에서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지적했다. 1. 이 철검은 삼인검(三寅劍) 혹은 사인검(四寅劍)이다. 2. 철검 몸통에 새긴 글자들 중 "作刀凡十二果"는 "칼 12자루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 발굴보고서가 정식으로 나왔다. 그 발굴보고서에서도 '삼인검'으로 보고한 것으로 안다. 이 발굴소식이 한국으로 전해진 직후, 나는 곧바로 관련 언론보도와 그 발굴조사기관 홈페이지 제공 배포자.. 2019. 1. 12.
하다의장(何多宜藏) 자세한 행적을 알 수 없는 6~7세기 무렵 백제인이다. 1991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한 부여 부소산성 동문지(東門址) 출토 백제시대 금동광배 뒷면에 적힌 조성기에서 존재가 드러났다. 이 광배를 장착한 불상 발원자일 수도 있고, 그것을 만든 장인일 수도 있다. 부여 부소산성 동문지(東門址) 출토 백제 금동광배 뒷면 : 하다의장(何多宜藏)이 불상을 만들었다.(何多宜藏治佛) 2018.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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