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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타입2

데시벨 하나에 고정한 성덕대왕신종 국립경주박물관 뜰에는 성덕대왕신종이 보호각 아래 매달려 있다. 이 종이 매일 일정한 시각이면 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는 어느 시점에 성덕대왕신종이 내는 소리를 녹음해둔 것을 재방송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성덕대왕신종은 어느 순간부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폭풍우가 치건 무더위가 내리쬐는 날이건 매번 똑같은 데시벨의 소리를 낼 뿐이다. 성덕대왕신종에서 당좌가 멈춘지 오래다. 매일 같은 데시벨을 내는 성덕대왕신종. 우리는 지금껏 이를 전통이라 간주했다. 그것이 아키타입이라 간주하며 그것만을 묵수했다. 신종이 설혹 당좌에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끊임없이 두들겨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전통이요 변모하는 전통이다. (2013. 12. 17) 2022. 12. 17.
문화재 현장의 '원형'과 '상고주의' 요즘 들어 내가 부쩍 쓰는 말이다. 내가 한 켠 몸담은 이 업계, 문화재계 말이다. 거의 고질에 가까운 병폐가 있으니, 뿌리깊은 상고주의가 그것이다. 그래 나 역시 그에 한때 포로가 됐고, 그 탈출을 부르짖는 지금도 그것을 못내 떨치지 못하는 대목이 있을 수 있음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말이다, 내가 볼수록 이 상고주의 병폐는 심각해, 나는 이것을 에둘러 원형(아키타입, archetype) 고수주의라는 말로 바꿔어 시종해서 비판하곤 한다. 원형...이건 굳이 전공으로 나누자면, 건축사와 고고학에서 특히 두드러진 현상인데, 실은 건축사만 아니라 각 부문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위력을 발휘한다. 지금 우리가 문화재가 부르는 것들, 유·무형을 막론하고 이 업계 투신한 자들 뇌리에는 언제나 원형이라는 것이 있어야 .. 2019.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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