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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왕

흘우(屹于)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다루왕본기 : 3년(서기 30) 겨울 10월에 동부의 흘우(屹于)가 말갈과 마수산(馬首山) 서쪽에서 싸워 이겼는데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다. 왕이 기뻐하여 흘우에게 말 10필과 조(租) 500섬을 상으로 주었다. 7년(서기 34) 봄 2월에 우보 해루(解婁)가 죽으니[卒] 나이가 90세였다. 동부의 흘우(屹于)를 우보로 삼았다. 10년(서기 37) 겨울 10월에 우보 흘우를 좌보(左輔)로 삼고, 북부의 진..
우태(優台)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즉위년 :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시조 비류왕(沸流王)은 그 아버지는 우태(優台)로 북부여 왕(北夫餘王) 해부루(解夫婁)의 서손(庶孫)이었고, 어머니는 소서노(召西奴)로 졸본(卒本) 사람 연타발(延陀勃)의 딸이었다. [소서노는] 처음에 우태에게 시집가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맏은 비류라 하였고 둘째는 온조라 하였다. 우태가 죽자 [소서노는] 졸본에서 과부로 지냈다. 뒤에 주몽이 부여(扶餘)에서 용납되지 ..
연타발(延陀勃)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즉위년 :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시조 비류왕(沸流王)은 그 아버지는 우태(優台)로 북부여 왕(北夫餘王) 해부루(解夫婁)의 서손(庶孫)이었고, 어머니는 소서노(召西奴)로 졸본(卒本) 사람 연타발(延陀勃)의 딸이었다. [소서노는] 처음에 우태에게 시집가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맏은 비류라 하였고 둘째는 온조라 하였다. 우태가 죽자 [소서노는] 졸본에서 과부로 지냈다. 뒤에 주몽이 부여(扶餘)에서 용납되지 ..
마려(馬黎)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즉위년 :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여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 두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은 비류(沸流)라 하였고, 둘째 아들은 온조(溫祚)라 하였다.<혹은 『주몽이 졸본에 도착하여 월군(越郡)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두 아들을 낳았다.』고도 하였다.>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 ..
해루(解婁)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 41년(서기 23) 봄 정월에 우보(右輔) 을음(乙音)이 죽자 북부의 해루(解婁)를 우보로 삼았다. 해루는 본래 부여 사람으로 식견[神識]이 깊었고, 나이가 70세를 넘었으나 기력이 쇠하지 않았으므로 등용한 것이었다.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다루왕본기 : 7년(서기 34) 봄 2월에 우보 해루(解婁)가 죽으니[卒] 나이가 90세였다. 동부의 흘우(屹于)를 우보로 삼았다.
소모(素牟)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 18년(서기전 1) 겨울 10월에 말갈이 갑작스레 습격하여 왔다.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칠중하(七重河)에서 맞아 싸워 추장 소모(素牟)를 사로잡아 마한에 보내고 그 나머지 적들은 모두 [산채로] 구덩이에 묻어 버렸다.
을음(乙音) 백제 건국시조 온조왕의 족부(族父)로, 백제 건국 공신 중 한 명이다. 건국 직후 우보(右輔)가 되어 군사 분야를 전담하다가 온조 재위 41년 사망했다.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 2년(서기전 17) : 3월에 왕이 재종숙부[族父] 을음(乙音)이 지식과 담력이 있으므로 우보(右輔)로 삼고 군사 업무를 맡겼다. …41년(서기 23) 봄 정월에 우보(右輔) 을음(乙音)이 죽자 북부의 해루(解婁)를 우보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