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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원잡기

때되면 깨끗이 물러나라 서거정(徐居正·1420∼88)의 《필원잡기(筆苑雜記)》 제2권에 보인다. 고려 때에는 다섯 성(省)에 일곱 추(樞)가 있어 재상의 숫자가 적었으므로 서로 번갈아 가면서 직책을 제수하였기 때문에, 벼슬은 높아도 한직에 있는 자가 반수나 되어 70이면 반드시 치사하였고, 연령을 숨기고서 치사하지 않는 자는 여론이 나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비록 70이 되지 않았더라도 인끈을 풀고 퇴직을 원하는 자가 많았다. 본조 개국 이래로 비록 치사하는 ..
책 읽지 마라 서거정(徐居正·1420∼88)의 《필원잡기(筆苑雜記)》 제2권에 보인다. 수찬 성간(成侃)은 어려서부터 널리 보고 많이 기억하며 읽지 않은 서적이 없었으니, 경사(經史)로부터 제자백가와 천문ㆍ지리ㆍ의약ㆍ복서(卜筮)ㆍ도경(道經)ㆍ석교(釋敎)ㆍ산법(算法)ㆍ역어(譯語)의 모든 법을 두루 섭렵하였으며, 사대부나 붕우의 집에 희귀한 서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반드시 구해보고야 말았다. 내가 집현전에 있을 때에, 성간이 장서각 속에 있는 비장 본을 ..
한국에 도교가 없다? 서거정(徐居正·1420∼88)의 《필원잡기(筆苑雜記)》 제2권에 보인다. 어떤 사람이 내게 묻기를, “중국에서는 불교와 도교(道敎)가 병행하고 있으나 도교가 더욱 성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불교는 비록 성하나 도교는 전무한 형편이다. 만약 두 개의 교가 병행한다면 나라는 작고 백성은 가난한데 장차 어찌 견디겠는가.” 한다. 내가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소격서(昭格署)와 마니산(磨尼山) 참성(塹城)에서 지내는 초제(醮祭)같은 것은 곧 도가의 일종..
적에게 함부로 보이지 말아야 할 것 서거정(徐居正·1420∼88)의 《필원잡기(筆苑雜記)》 제2권에 보인다. 무절공(武節公) 신유정(辛有定)이 일찍이 왜적을 맞아 여러 번 싸우다가 포로가 되었는데, 왜적이 꿇어앉히고 목을 베려고 했다. 이때 무절공은 왜적의 두 다리 사이에 낭 신이 축 늘어진 것을 보고 갑자기 손으로 잡아당기니, 적이 땅에 엎어지는 것을 칼을 빼어 목을 베었다. 당시에 그를 맹장이라 일컬었는데, 뒤에 병사(兵使)가 되어 변방을 진압하니 용맹과 공업(功業)으로 ..
연오랑세오녀와 신라수이전 서거정(徐居正·1420∼88)의 《필원잡기(筆苑雜記)》 제2권에 보인다. 일본(日本)의 대내전(大內殿)은 그 선대가 우리나라로부터 나왔다 하여 사모하는 정성이 보통과 다르다 한다. 내가 일찍이 널리 전대의 역사책을 상고해 보아도 그 출처를 알 길이 없고, 다만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에 이르기를, “동해 물가에 사람이 있었는데, 남편은 영오(迎烏)라 하고 아내는 세오(細烏)라 했다. 하루는 영오가 해변에서 수초[藻]를 따다가 홀..
사방지(舍方知), 여장남자(女裝男子) 서거정(徐居正·1420∼88)의 《필원잡기(筆苑雜記)》 제2권에 여장남자(女裝男子), 혹은 여성으로 행세하면서 많은 여성을 기롱한 남자 얘기가 보인다. 이 남자가 바로 사방지(舍方知)라는 자인데, 이 자가 가슴은 여자, 아랫도리는 남자인 소위 shemale인지 아닌지는 자신이 없다. 관련 기록을 추리면, 남성인데 여성으로 행세한 단순 남성인 듯한 느낌을 준다. 한데 그 극적 드라마성 때문인지, 이를 모델로 하는 사극 같은 것을 보면, 가슴은 젖소만하..
심청의 선배들과 인신공희 서거정(徐居正·1420∼88)의 《필원잡기(筆苑雜記)》 제1권에 이르기를 문충공 신숙주가 일찍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데, 우리 국경에 몇 리(里) 남짓하게 왔을 때, 홀연 폭풍을 만나 배를 미처 언덕에 대지 못하였다. 여러 사람이 모두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으나 공은 정신과 안색이 태연자약하여 말씀하기를, “대장부는 마땅히 사방에 유람하여 흉금을 넓혀야 한다. 지금 큰 물결을 건너서 해 뜨는 나라를 보았으니, 족히 장관(壯觀)이 ..
남수문과 고려사절요 서거정(徐居正·1420∼88)의 《필원잡기(筆苑雜記)》 제1권에 이르기를 유의손(柳義孫) 선생, 권채(權採) 선생, 문희공(文僖公) 신석조(辛碩祖)와 남수문(南秀文) 선생 등이 함께 집현전에 있으면서 그 문장이 다 같이 일세에 유명하였는데, 남(南) 선생을 더욱 세상에서 중하게 추대하였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초고는 대부분 남선생 손에서 나왔다. 제공(諸公)들이 모두 크게 현달하지 못하였으니 애석하다. 조선왕조가 개창한 직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