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미라 이야기/마왕퇴와 그 이웃160

[마왕퇴 스핀오프] 중국 남방 문화와 초 문화 앞에서도 계속 말했고, 뒤에서도 계속 강조하게 되겠지만, 저들 집안이 터잡은 장사長沙는 지금도 그렇지만 강고한 남방 초 문화 전통에 뿌리 박고 있으며, 이런 유구한 전통은 그들이 진秦 혹은 한漢과 같은 강력한 중앙집권을 구사한 통일 왕조가 들어선 뒤에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에서 초 문화 전통이란 무엇인가를 물을 수 있거니와, 이 남방 초문화는 간단히 정리하면 건조한 고원지대 잡곡 중심 황화 문명에 견주어 걸핏하면 범람하는 장강을 기반으로 삼는 저지대 평야 문화이며, 그런 까닭에 물[水]이 차지하는 위치가 막중막비하고, 종교 사상이라는 관점에서는 황화 문명 합리주의에 견주어 무巫 문화 전통이 매우 강하다는 사실을 지적해 둔다. 일본의 중국 도교 중심 종교사상사가 후쿠나가 미쓰지福永光司는 내 기억에 .. 2025. 2. 24.
[마왕퇴와 그 이웃-11] 문화대혁명 광풍 속 고고학자들 다음의 조연은 당연히 현장의 고고학자들이다. 마왕퇴가 발굴되던 당시의 중국상황은 험악했다. 1966년 시작한 문화혁명은 아직 불길이 다 잦아든 상태가 아니었다. 마왕퇴 발굴이 1971년에 시작하여 1974년까지 계속되었는데, 중국 대륙에서는 문혁에 의한 공자 비판이 1973년에 시작되어  곽말약이 공자를 숭배한다고 비판받아 스스로 반성문을 써야 할 정도로 정세는 불안정했다.  이 당시 홍위병이 곡부의 공자묘를 습격해 크게 훼손한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정세에서 사실 마왕퇴 발굴과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 놓은 일이나 다름 없었다. 중국에서 나온 마왕퇴 발굴 관련 저서를 보면이 당시 고고학자들의 생고생을 낱낱이 적어 놓은 것이 많은데 물론 사람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게 완벽하지는 못한 것이.. 2025. 2. 24.
[마왕퇴와 그 이웃-10] 의학자와 文士의 기로에서 앞에서 쓴 곽말약 이야기를 조금 더 써보겠다. 곽말약은 앞에 쓴 것처럼 큐슈제대 의학부 출신 의학사-의사인데 졸업한 해가 1923년. 당시로서는 최고수준 학벌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래도 환자를 직접 봤다는 기록이 전혀 없으니 졸업과 함께 의사는 사표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겠다. 곽말약 글을 보면 의학자 특유의 섬세함과 날카로움이 보이는데, 추리소설 작가로 명성을 날렸지만 셜록 홈즈 소설에서 의사 특유의 문진법을 추리에 그대로 적용한 코난 도일처럼 의대에서 보낸 본과 4년은 그의 평생에 깊은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곽말약과 마왕퇴 미라 관련해서는 두 개 이야기가 전한다. 사람들 사이에 전해오는 이야기라 맞는지 틀리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국 쪽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이 이야기는 언제나 인용되는 부분.. 2025. 2. 23.
[마왕퇴와 그 이웃-9] 곽말약郭沫若(1892~1978) 다음으로 마왕퇴 발굴의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한 또 다른 저명인사는다름 아닌 궈모뤄, 곽말약이다. 마왕퇴 미라가 발견된 후 제대로 된 의학적 조사가 시행될 때까지 여러 고비가 있었는데이럴 때마다 급한 불을 끈 사람은 당시 총리 주은래이며 중국과학원 원장 곽말약이다. 마왕퇴 조사에서 대체적인 방향 제시를 주로 했던 주은래와 달리곽말약은 마왕퇴 미라 조사 때 매우 전문적인 사항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라에 대한 의학적 조사가 시작되기 전 곽말약이 연구진에게 남긴 메모가 남아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상당히 구체적이며 의학적으로도 합리적이라 볼 만 하다. 곽말약이 이처럼 마왕퇴 미라에 대한 의학적조사에 관심을 가진 첫 번째 이유는그가 일본에서 의대를 졸업한 의사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곽말약 연표를 보면.. 2025. 2. 23.
[마왕퇴와 그 이웃-8] 주은래周恩来 마왕퇴 발굴의 주연은 당연히 마왕퇴 무덤일 것이다. 그러나 이 발굴은 당시 중국의 정치적 정세가 무척 불안정했기 때문에 당시 중국의 민도와도 겹쳐 수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마왕퇴의 스토리를 만드는데 거든 조연을 순서대로 소개해 보겠다. 가장 먼저 주은래-. 소위 중국 공산당의 영원한 2인자로 국공내전 이전부터 시작해서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실각한 적도 없고 항상 마오의 바로 아래 2인자 자리를 지켰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인물이 항상 주은래의 비위를 맞추기만 했던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마오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그 혼란의 시기에 나침반처럼 항상 가야 할 방향을 가리켰다고 해도 되겠다. 주은래는 마왕퇴 발굴에서도 그런 역할을 했다.   마왕퇴가 전한 시대 무덤이라는 것이 확인되고 그 안에서 무.. 2025. 2. 23.
[마왕퇴와 그 이웃-7] 핵 방공호를 파다 찾다 앞에서 이야기한 핵공포와 방공호-. 1969년 소련이 자국산 핵무기 상당수 탄두 방향을 중국 쪽으로 돌리면서중국의 공포는 격심해졌다. 이 때문에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핵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방공호 파기가 전국적으로 붐이 일었는데인민해방군 사령부의 방공호가 호북성 지역에 만들어진 것처럼 호북-호남성 일대도 핵 방어용 방공호가 여러 곳 지어졌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장사시 병원 부지에 들어설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파다 보니 범상치 않은 광경이 목격되었다. 열심히 파다 보니 고령토가 나오기 시작했고 파 들어간 구멍에서 기체가 솟아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옆에서 무심코 담배불을 붙이던 병원 원무처장이 불을 다 붙이기도 전에 구멍에서 솟아나온 기체에 불이 붙어 폭발해 버린 것이다. 이.. 2025. 2. 2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