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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6

민족이라는 틀안에서 한국사를 사고 하면, 도달할 결론은 사실 뻔하다. 최근 한국사의 논의가 조금 슬럼프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필자가 보기엔 개별 학자분들의 문제라기 보다는 지금 한국사가 설계된 파라다임이 시효를 다한 결과라 본다. 지금 한국사는 해방 이후 한 손에는 식민사관의 극복, 다른 손에는 민족주의라는 쌍칼을 들고 설계된 사유체다. 이 틀로는 더이상 발전이 어렵다고 본다. 한길사 한국사는 이제 무덤 안에 넣어버리고, 민족주의로 부터 자유로와져 한국사를 바닥부터 뒤집기 전에는 슬럼프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라 본다. 고조선을 한민족국가의 첫머리에 올려놔서 그 실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은 좀 되었는가? 필자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다. 민족으로 현대사를 설계하니 미래가 보이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자유로운 사고가 혁신과 발전.. 2024. 1. 22.
고조선과 낙랑은 분리하면 안 될 것 지금 한국사에서는 고조선과 낙랑을 분리하여 고조선은 한국사, 낙랑은 중국의 식민지로 정의하여 한국사에서 사실상 퇴출된 상태이다. 심지어는 낙랑 대방 등 군현이 들어간 지도 한 장도 변변히 교과서에 들어가 있지않다. 이런 건 좋다. 문제는 고조선이라는 실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인데, 언젠가 썼지만,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문명에서 고조선과 비슷한 종말을 겪지 않은 문명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예전에 예를 들었지만 그리스 문명,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페르시아 문명까지도 문명의 끝은 모두 이민족 지배로 끝났다. 낙랑은 그 고분에서 나오는 유물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고조선 멸망 이후 낙랑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문화적으로 과도적인 변화를 겪는 양상이 역력하며 군현 자체도 .. 2024. 1. 22.
[당시삼백수] 동교東郊 : 위응물韋應物 吏舍跼終年 出郊曠淸曙 楊柳散和風 靑山澹吾慮 依叢適自憩 緣澗還復去 微雨靄芳原 春鳩鳴何處 樂幽心屢止 遵事跡猶遽 終罷斯結廬 慕陶眞可庶 (편집자주- 필자는 번역을 안 했지만 저 시는 대강 다음과 같이 옮길 만하다.) 벼슬살이 평생토록 매달리다 탁 트인 교외 나가니 맑은 새벽 버들솜 부드러운 바람에 흩어지고 푸른산에 내 근심 담담해지네 숲에 기대 자적하며 쉬면서 시내 따라 왔다갔다 하네 가랑비 꽃 핀 들판에 자욱한데 봄 비둘기 어디서 우는지 은거하려 했지만 여러 번 막히고 공무 따르느라 여전히 바쁘기만 하네 벼슬 그만두고 이곳에다 집 지으면 도연명 동경하는 삶 이루어지겠지 위응물은 오랜 공무를 마치고 은퇴하여 노후를 보내려 한 모양이다. 새로 집을 마련할 곳을 보니 산도 들도 마음에 딱 들어서 여기다 집지어 살면.. 2024. 1. 21.
[당시] 問劉十九: 白居易 綠蟻新醅酒 紅泥小火爐 晩來天欲雪 能飮一杯無 인상파가 따로 없다. 당시가 동아시아 문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딱 20자로 추운 겨울날 눈이 내리려는 저녁 술이나 한 잔 할까 싶은 심정을 카메라처럼 찍어냈다. 2024. 1. 20.
선과 관련이 있는 조선 막사발의 미 조선 막사발의 미는 불교 선과 관련이 있다. 유교와는 관련이 없다. 불교의 선에서 일본의 다도가 나왔는데 조선 막사발이 일본의 국보가 된 것은 바로 그러한 일본 다도의 흐름에서 막사발이 가지고 있는 위치 때문이다. 조선의 미가 아니다. 이 말에 분개한다면. 찾으면 된다. 이쪽에서도. 조선 막사발의 미가 한국 역사의 흐름에서 나왔다는 것을. 그런 것을 찾을 수 있다면 필자도 물론 기쁘겠지만. 그런 확률은 별로 높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생각해 보자. 코카콜라 병이 있다. 코카콜라 병을 하늘에서 조종사가 먹다가 버려 그것이 부시맨의 손에 들어가 이것이 하늘이 준 엄청난 선물로 간주되어 숭상되더라도 그 코카콜라 병은 조종사 나라의 역사책에 기술될 수는 없다. 코카콜라 병은 부시맨들의 역사에서 의미가 있을 것.. 2024. 1. 20.
쿄토의 현재모습에서 과거를 보기 (1) 지금 쿄토의 현재 모습은 800년대 헤이안쿄의 모습이 아니다. 헤이안시대 왕성 구역이 전국시대를 거치며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가 오다 시대 이후 다시 일어나 자연적인 도시의 팽창을 경험한 결과가 지금 쿄토이다. 간단히 설명해 보면, 위 지도의 화면 중간 약간 우측에 강이 하나 보일 텐데 이 강의 동쪽은 원래 헤이안쿄가 아니다. 헤이안쿄는 이 강의 서쪽에만 있었다. 강의 동쪽은 헤이안시대 후반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쿄토의 중심지역 중 일부가 되었다. 일본의 국보로 유명한 "낙중낙외도"라는 그림이 있는데, 여기서 "낙외"가 바로 저 강의 동편이다. "낙"이란건 "낙양"의 뜻이다. 헤이안시대 왕성의 경내에 있었던 지역이 "낙중"이다. 따라서 "낙중낙외도"의 "낙외"지역은 원래 헤이안경이 아니었던 곳이다. 202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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