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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6

일본의 석고제石高制와 병사 수, 그리고 훈련도감 간단히 적어둔다. 일본의 석고제石高制에서 1석은 남성 성인 1명이 1년간 먹는 쌀의 양이다. 막번시대 일본에서 가장 큰 번이 가가번加賀藩이었다고 하는데 가가번은 호왈 가가백만석이라고 해서 백만석짜리 번이었다고 한다. 이대로 믿어 본다면 이 번에서는 백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병사 수는 어떨까? 100석당 병사 1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가가번의 경우 가용 병력은 1만 명인 셈이다. 조선후기 훈련도감군은 병력 증감이 있었는데 대략 5천명선이었다고 하니 일본으로 친다면 50만석 짜리 번이 유지할 수 있는 직업병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당시 파악하고 있는 인구가 6백만선이었다고 감안하면, 국가에서 6만 병력은 유지가 가능해야 했을 것 같은데, 조선시대 오군영이 그렇게 국가에 막대한.. 2024. 1. 7.
고려시대는 무과가 없다 고려시대는 무과가 없다. 왜 없겠는가? 에도시대에 무슨 무과가 필요하겠는가? 가마쿠라 막부에 무과가 왜 필요하겠는가? 군인이라는 직역이 세습되는 사회에서는 무과란 필요가 없다. 고려시대에는 흔히 행오에서 군인을 발탁하여 썼므므로 무과가 없다 라고 하고 있다. 이게 뭐 논산 훈련소에서 뽑아 놓고 잘 뛰는 사람을 위관 영관 장관급으로 춣세시켜 썼다는 소리가 아니다. 어차피 군인은 세습했다. 그게 군인전이다. 직역이 세습되고 있었으니 무과가 필요 없는 것이다. 2024. 1. 7.
육십이후의 전략 필자의 논문 인용 횟수 변화다. 뭐 요즘은 워낙 잘들 하는 사람이 많아 필자의 인용횟수는 그냥 평범한 수준이다. 여기서는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필자의 인용횟수 변화를 보면, 2014년에 한 번, 2018년에 한 번 그리고 2021년에 반등하여 피크를 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인용횟수가 반등한 것은 사실 그보다 몇 년 전에 연구 주제의 변화를 모색했기 때문이다. 연구주제를 변화시키고 소위 말하는 current trend와의 동기화를 꾀한다. 그래야 다시 연구수준이 흐름을 타고 갈 수 있다. 이게 아주 힘이 들고, 사실 사람 할 짓이 못된다. 이런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인용횟수가 떨어지기 시작하다가 학자로서 종국에는 산송장이 된다. 필자 생각에는, 이런 변화의 모색은 나이가 들면.. 2024. 1. 7.
치아 마모도는 곡물 도정과 관련이 있을 것 사람의 치아는 계속 닳는다. 요즘은 그 정도로 닳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고인골의 치아를 보면 치아의 수질 부분까지 다 노출되도록 닳은 경우가 많다. 이렇게 닳은 모양을 보고 거친 음식 때문이라고 대개 추정을 하거나 아니면 밀과 같이 가루를 만들어 빵을 굽는 경우에는 가루를 만들때 미세한 돌가루가 섞여 들어갔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거친 음식이라 하면 역시 애매하다. 거친 음식으로 예를 들어 식물성 섬유를 과거에 요즘보다 많이 섭취한 것을 들기도 하는데 식물성 섬유 때문일까? 필자가 보기엔 이빨을 가장 빨리 닳게 만드는 건 식물성 검유나 미세한 돌가루가 아니라 곡물의 도정 정도다. 정말 잡곡과 도정이 덜된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 거친 밥이라는 게 뭔가를 실감하게 되는데 특히 이걸 .. 2024. 1. 6.
건강과 음식은 관련이 있다 필자가 요즘 음식에 매달리는 것은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은 아니고, 이유가 있어서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건강은 음식과는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보면 고인골의 치아 마모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같은 나이인데도 치아 마모도가 다르다. 이런 건 결국 먹는 음식의 성격 때문이다.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는 반드시 알아야 풀리는 부분이 많다. 아마도 먹는 음식의 종류나 쌀이 도정 정도가 치아 마모도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걸 과연 낱낱이 밝힐 수 있을것인가 하는 의문은 필자에게도 있지만, 어쨌건 한국에 대해서도 이런 작업은 있어야 하고 또 이걸 전 세계적으로 본다면 관련 자료의 축적량이 만만치 않다. 필자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단지 몇 번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며 앞으로 이 블.. 2024. 1. 6.
밥짓는데 쓴 토기는 "와분" 삼국유사를 보면, 진정법사가 딱 하나 있던 쇠솥을 시주하고 토기로 밥을 지었다 하는 구절에서, "와분"이라 하였으니 乃以瓦盆爲釡, 熟食而飬之 아래 밥 짓는데 쓴 것 같은 시루 토기는 최소한 고려시대까지는 와분이라 불렀던 모양이라, 와분이라면 그 당시에 이미 저건 그릇도 아니라는 의미도 있는 듯. 밥 짓는데 썼을 토기. 삼국유사에는 "와분"으로 나온다. 뭐 당시의 고유명사였는지는 모르겟지만, 철솥이 나온 후의 토기의 운명을 짐작하게 하는 이름이다. *** 盆 《禮記‧禮器》: “夫奧者, 老婦之祭也, 盛於盆, 尊於瓶。” 鄭玄 注: “盆、瓶, 炊器也。” 202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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