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NEWS & THESIS6381 석굴암에 미쳐 신화와 싸우다 산화한 성낙주 선생 선생은 생평 투사였다. 전교조 교사로 참교육을 위해 싸웠고, 그런 싸움과 더불어 신화와도 피말리는 전투를 벌였다. 어떤 신화인가? 석굴암을 둘러싼 신화들과의 기나긴 싸움이었다. 석굴암을 두고 상식처럼 통용하는 모든 것을 그는 신화로 규정하며, 그 타파를 위해 맹렬히 싸웠다. 예컨대 그 축조에 황금비율이 적용됐다느니 하는 주장이나, 동해 아침 햇살이 석굴암 본존불 백호를 비추게끔 설계됐다는 '햇살 신화'는 밑도끝도 없은 망발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그것은 곧 기성 학계 권력과는 쟁투이기도 했다. 그런 신화 대부분이 소설이라며, 기성 학계 권력자들이 소설을 썼다고 질타했다. 그런 신화의 무덤에서 건져내야 석굴암이 제대로 보인다고 했다. 이런 주장을 그는 각종 대외활동과 저작 활동을 통해 펼쳤다. 그는 .. 2020. 11. 5. Threshold on Winter over Gyeongbokgung Palace, Seoul 2020. 11. 5. [전시소식] 민화, 길상의 순간 이른바 민화民畵가 요샌 한국문화 대세 중 하나라 외국에서도 부쩍 한국 민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하거니와 국내는 이미 포화상태를 방불하리만치 극강을 구가한다. 그에 종사하는 사람들 말을 빌리자면 참여도를 어느 만큼 잡아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종사자 혹은 동호인만도 물경 70만을 헤아린다 할 정도다. 공장에서 가차운 인사동을 봐도 한 집 걸러 한 갤러리가 민화전을 한다 봐도 무방할 정도로 민화가 활기다. 예 그런 민화전이 하나 더 있으니 아륜화실이라는 데를 근거로 삼는 민화작가들이 이라는 슬로건 아래 전시를 한다거니와 오늘 개막해 오는 10일까지 갤러리시작 이라는 데서 한단다. 이에는 이 자리를 빌려 작가 데뷔를 하는 지인 최주연 선생도 출품했다며 왕림을 요청하므로 나는 내일 들려보려 한다. 민화도 .. 2020. 11. 4. 고려 강화 도읍시대 도성에서 찾은 문門 고려가 몽골 침략기에 수도를 지금의 강화도에 옮겨 운영한 시기를 요즘 강도江都시대라 표현하기도 한다. 강화 도읍 시대에 대한 줄임말이다. 그 기간은 39년인가 비교적 짧지만, 모름지기 도성이라면 갖출 것은 다 갖추었으니, 도성까지 있었다. 조선시대 한양도성 같은 대규모 도읍 방어시설이 있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 도성은 중층이었으니 그 상대적 위치에 따라 내성-중성·외성으로 구분하곤 한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에서 강도시대 고려 도성 중에서도 중성이라는 데는 발굴한 모양이다. 그 결과 성곽에다가 마련하는 출입시설인 문 흔적을 발굴한 모양이다. 아래는 그 소식을 정리한 강화문화재연구소 보도자료다. 남한 유일의 고려도성都城 강화중성에서 문지 최초 확인 -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유튜브에서 발굴조사 성과 온라인 공.. 2020. 11. 4. 다곽식多槨式 합천 소오리고분군 Excavation of Sooru Tumuli in Hapcheon 합천 소오리고분군 陜川巢梧里古墳郡 경남 합천이 문재인 정부 들어 핵심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가야사 연구복원에 부응하는 움직임을 부쩍 잦게 보이거니와, 그 일환으로 경내 소재하는 이른바 가야고분들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이어니와, 그 한 성과가 4일 발표되었으니 이르건대 이곳 삼가면 소오로고분군이라는 데를 팠더니만 그 소재하는 곳 이름을 따서 '삼가식 고분'이라 명명할 만한 독특한 무덤 구조를 확인했다 하거니와 이를 정의하기를 "독특한 다곽식 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이 묘제墓制는 "고령 지산동에서 확인되는 주·부곽 및 순장곽이 축조되는 대가야식 묘제나 고성 송학동에서 확인되는 분구묘 및 주곽, 배장곽이 배치되는 소가야식 묘제와는 전혀 다른 양.. 2020. 11. 4. 나는 왜 토함산 석탈해왕 사당터를 발굴했는가[이채경] 경주 토함산 석탈해왕 사당지[동악사지東岳祠址] 이 유적을 발굴하고자 문화재청 발굴제도과에 긴급발굴조사비 지원을 6번이나 신청한 끝에 조사비를 얻어내었다. 유적이 토함산 정상부 등산로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있었고 또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래 각종 문헌에서 임진왜란 이전까지 제사가 지속되어 왔다는 기록의 실체를 밝혀보고 싶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문화재로 지정하여 제대로 보전하고 싶었다. 발굴조사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측면이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석탈해왕의 유골로 만들었다는 소상塑像 파편이라도 수습되기를 기대하였는데 그게 없었다. 확인된 사당건물터는 고려말기에 새로 중건된 것이었고,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는 완전히 없어져서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통.. 2020. 11. 3. 이전 1 ··· 831 832 833 834 835 836 837 ··· 106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