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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석굴암에 미쳐 신화와 싸우다 산화한 성낙주 선생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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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생평 투사였다. 전교조 교사로 참교육을 위해 싸웠고, 그런 싸움과 더불어 신화와도 피말리는 전투를 벌였다. 어떤 신화인가? 석굴암을 둘러싼 신화들과의 기나긴 싸움이었다.  

 

석굴암을 두고 상식처럼 통용하는 모든 것을 그는 신화로 규정하며, 그 타파를 위해 맹렬히 싸웠다. 예컨대 그 축조에 황금비율이 적용됐다느니 하는 주장이나, 동해 아침 햇살이 석굴암 본존불 백호를 비추게끔 설계됐다는 '햇살 신화'는 밑도끝도 없은 망발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그것은 곧 기성 학계 권력과는 쟁투이기도 했다. 그런 신화 대부분이 소설이라며, 기성 학계 권력자들이 소설을 썼다고 질타했다. 그런 신화의 무덤에서 건져내야 석굴암이 제대로 보인다고 했다. 이런 주장을 그는 각종 대외활동과 저작 활동을 통해 펼쳤다. 

 

 

고 성낙주 선생

 

그는 참 질긴 사람이기도 했다. 참말로 기자들을 많이 괴롭혔다. 아마 그런 괴롭힘에 가장 많이 당한 기자가 나였을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자료를 찾았다고 흥분한 연락이 자주 왔고, 이런 책을 냈노라며 들고 나타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석굴암에 관한 자료라면 닥치는 대로 긁어모았다. 식민지시대 엽서도 보이는 대로 옥션 등을 통해 구입했다. 그가 모은 자료를 토대로 하는 석굴암 관련 전시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만큼 그는 열정적이었다. 그런 선생이 근자 뜸했으니, 그러고 보니 선생을 잊고 지냈다. 그런 선생을 느닷없이 부고 소식란을 통해 접하니 황망하기가 짝이 없다. 보도를 보니 지난달 29일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5일 아침 9시 30분쯤 하계동 한 병원에서 세상을 등졌다는데, 그렇다면 느닷없이 변을 당했다는 뜻인 듯하다. 

 

기간 내가 쓴 그와 관련한 소식 중 석굴암을 중심으로 하는 그의 행적을 비교적 잘 정리한 보도를 전재함으로써 고인을 기리고자 한다. 

 

 

2014.06.25 16:18:50
"신화와 환상 걷어내야 석굴암 맨얼굴 보인다"
석굴암에 미친 성낙주 교사 또 하나의 단행본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현직 중학교 국어 담당 교사로 어쩌다가 석굴암에 미쳐 본업과 취미가 바뀌어 버린 듯한 성낙주 씨. 소설을 쓰다가 석굴암 미학 연구자로 변신한 그가 석굴암에 천착한 또 하나의 단행본을 들고 나왔다. 

 

 

고 성낙주 선생

 

성 교사는 이번 책 '석굴암, 법정에 서다'(불광출판사)가 1960년대 석굴암 복원공사 완공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출간에 즈음해 25일 서울시내 모 식당에서 기자들은 만난 그는 "문화재 복원사에서 석굴암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데 그 50주년을 기념하는 그 흔한 행사 하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 성 교사는 단기 4294년(1961) 민주당 장면 정권 당시 문교부에서 작성한 '석굴암 석굴의 현황과 보수대책(안)'이라는 등사판 책자 하나를 들고 나왔다. 이미 누렇게 색깔이 뜬 데다 금방이라도 종이가 떨어져 나갈 듯한 192쪽짜리 이 희귀 보고서를 어디에선가 입수한 모양이다.  

 

서울 온곡중 교사로 내년에 정년퇴임하는 성 교사는 이 보고서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이건 민주당 정권에서 작성한 겁니다. 석굴암 복원은 박정희 정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해 1964년 7월1일 준공을 보았지요. 한데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석굴암 복원의 골자가 이 보고서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예컨대 일본강점기인 1915년 완공을 본 석굴암 복원공사에서는 석굴암 전실(前室)이 없었지요. 한데 이 보고서에는 전실이 있어야 한다고 했고, 실제 복원이 그렇게 진행됐습니다." 

 

고 성낙주 선생이 복원한 석굴암 지붕 

 

이번 단행본은 부제가 '신화와 환상에 가려진 석굴암의 맨얼굴을 찾아서'라는 점에서 성 교사가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목적의식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석굴암은 너무 신격화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석굴암 축조에 황금비율이 적용됐다느니 하는 주장이나, 동해 아침 햇살이 석굴암 본존불의 백호를 비춘다는 '햇살 신화'는 전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성 교사는 "석굴암에 덧칠된 햇살 이야기를 걷어내고, 원형이 어떻니 하는 논쟁에서 탈피해야만 비로소 석굴암의 실체적 진실이 조금이라도 밝혀지고 나아가 석굴암 담론이 풍성해진다"고 말한다. 

 

성 교사에 따르면 이렇다 할 만한 의문도 없이 상식처럼 통용되는 이러한 논점 대부분은 "석굴암이 해발 575m 토함산 중턱 골짜기에 자리잡은 현실을 무시한 환상과 신비주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번 책을 통해 그는 다른 논점들도 바로잡으려 한다. 원래의 석굴암은 본존 앞이 뻥 뚫린 구조이며, 현재와 같은 전실이 없는 개방구조라는 주장은 1890년대 석굴암 관련 중수기 문서를 통해 반박하며, 주실 입구 두 기둥 위 홍예석은 일본 신사의 도리이를 본떠 총독부 복원 공사 때 올렸다는 주장 또한 터무니없다고 강조한다. 

 

고 성낙주 선생. 불광출판사 제공

 

석굴암 본당 밑으로 샘물을 흘려 실내의 결로 현상을 방지했다는 주장도 전연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이와 함께 이번 책은 구한말 석굴암의 실상과 총독부 개축 공사의 명암을 살피고 석굴암 원형 논쟁의 출발점인 1960년대 문화재관리국의 복원공사 과정을 정리한다. 그는 1960년대 복원공사가 원형을 훼손했다는 학계 일각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 와중에 지난해에도 일부 언론과 석조문화재 전문가가 제기한 '석굴암 위기론'을 비판한다. 

 

성 교사는 "내가 석굴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지난 20년간만 해도 시도때도없이 석굴암이 당장 무너진다는 위기론이 등장했다"면서 "그런 주장대로라면 석굴암은 이미 여러 번 무너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석굴암이 결코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면서 "한번 들어가서 잠깐 보고는 언론을 통해 위기를 과대포장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408쪽. 2만3천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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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사학계의 석굴암 전문가 성낙주 소장 별세
송고시간 2020-11-05 16:26 
임동근 기자임동근 기자

 

www.yna.co.kr/view/AKR20201105144100005?section=search

 

재야사학계의 석굴암 전문가 성낙주 소장 별세 | 연합뉴스

재야사학계의 석굴암 전문가 성낙주 소장 별세, 임동근기자, 문화뉴스 (송고시간 2020-11-0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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