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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

by taeshik.kim 2018.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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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이나, 6세기 중반 무렵 북위(北魏)에 출사했음이 확실한 양현지(楊衒之)라는 사람 저술이다. 


가사협(賈思勰)의 《제민요술》(齊民要術), 역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注)와 함께 북위시대 3대 걸작으로 꼽힌다. 


저자 양현지는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만성현(滿城縣)인 북평(北平) 출신이지만 행적과 가계 등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姓은 보통 楊이라고 하나 陽 혹은 羊이라 쓴 곳도 있으며, 기록에 따라서는 무군부사마(撫軍府司馬), 봉조청(奉朝請), 또는 기성태수(期城太守)를 지냈다고도 한다. 


낙양가람기 序에서 양현지 스스로는 “무정(武定) 5년 정묘년(547)에 나는 공무로 낙양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는 대목이 보이고, 이때 폐허가 된 낙양을 본 안타까움에서 “낙양 안팎으로는 천여 개 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텅 비어 종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으니 후세에 전해지지 못할까 두려워 이 사실을 글로 남긴다”고 했으므로, 북위가 쪼개져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분열될 무렵에 북위에서 관료로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특성은 낙양가람기 곳곳에서 북위를 황위(皇魏)라고 높이는 반면, 남조 왕조인 제(齊)에 대해서는 위제(僞齊)라고 해서 폄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분명하다.

 

序와 본문 5권으로 이뤄졌는데, 전체로 보아 북위시대 수도인 낙양 일대에 소재한 사찰들에 대한 소개서이자 안내서다. 먼저 序에서는 저자가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를 밝힌 다음 북위 태화(太和) 17년(493)에 고조(高祖), 즉 효문제(孝文帝)의 명에 의해 평성(平城)에서 낙양으로 천도가 결정되고 그에 따라 추진되고 건설된 낙양성(洛陽城)을 개괄로 설명한다. 


이런 序는 결국 성내(城內)와 성동(城東), 성남(城南), 성서(城西), 성북(城北)의 크게 5개 권역별로 낙양 도읍을 나누어 그곳들에 각각 위치해 들어선 사찰들에 대한 내력이라든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도입부에 해당한다. 


본문 5권은 결국 이들 5개 구역별 사찰 소개서로 분권화했다.


문체는 4자 혹은 6자로 댓구를 이룬 소위 변려문이다. 수록 내용 중에서는 상상력이 발휘된 신이한 이야기가 많은데 이런 특성에 대해 대만의 유구주(劉九州)는 《신역 낙양가람기》(新譯洛陽伽藍記. 대만 三民書局. 1994)에서 낙양가람기가 위진(魏晉) 이래의 지괴소설에서 당대의 전기소설로 넘어가는 중요한 중간고리 역할을 보여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동서 ‘導讀’ 23-24쪽)


서술 대상 시기는 낙양 천도 493년 이후 내분으로 인해 도읍을 업(鄴. 지금의 하북성 임장현<臨漳縣>)으로 옮기게 되는 534년까지 약 40년이다.


판본은 현재까지 14개가 알려졌다. 일별하면 여은당본(여은당본), 오관고금일사본(오관고금일사본), 녹군정본(녹군정본), 한위총서본(한위총서본), 서류경본(서류경본), 황주오씨진의당활자본), 조광각학진토원본, 오약준집증본, 낙양서화선원중간집증본, 이보순중간집증본, 당안구침본, 일본대정장경본, 사부비요중간집증본, 장종상합교본, 낙양가람기교주, 상해고적출판사본이 그것이다. 


이 중 명 가정(嘉定) 연간(1208-1224)에 출판된 여은당본(如隱堂本)이 가장 오래된 선본으로 꼽힌다. 현대에는 주조모(周祖謨)의 낙양가람기교석(洛陽伽藍記校釋)과 범상옹(范祥雍)의 낙양가람기교주(洛陽伽藍記校注. 1958. 상해고적출판사)가 유명세가 있다.


역주본으로는 유구주(劉九州)의 《신역낙양가람기》(新譯洛陽伽藍記. 대만 三民書局. 1994)가 있으며, 일본에서는 이리야 요시타카(入矢義高)의 낙양가람기(平凡社. 1974)가 있다. 


이상은 서윤희 옮김 《낙양가람기》(2001. 눌와) 중 ‘해제 및 옮긴이의 글’을 참조했다.


국내에서는 이들 두 역주본을 토대로 삼은 서윤희 옮김 《낙양가람기》(2001. 눌와)가 있다. 서윤희는 1968년생으로 서강대 사학과 출신이자 귀곡서당 출신으로, 서문에 의하면 출판은 하영휘가 주선했다고 한다. 국내 연구업적으로는 김영민, ‘낙양가람기 연구’(한국외국어대 석사학위논문, 199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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