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22일, 겨울 기운 여전한 그날
나는 요서 갈석산이란 데를 올랐다.
이 갈석산이 조조가 오른 그 갈석산인가 하는 논란은 여전하다.
이르기를 갈석이라 부른 데가 하나가 아니라 하고
또 지금 갈석이라 부르는 산
곧 내가 오른 이 갈석산이 그 옛날에도 갈석이었는가 하는 논란은 많다 한다.
그 곡절이 어떠하건 갈석이란 이름이 붙었으니 올라보지 아니할 수 없어 올랐다.
당시도 케이블카가 있었지만 겨울이라 이용객 적어 그랬겠지만
운행을 멈추었으니 뚜벅뚜벅 걸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 갈석이란 존재는 한국문화사에서는
이른바 고조선 낙랑 위치 논쟁과 관련해 예민한 곳이다.
이 갈석이 그 갈석인가 하는 논란을 내가 결판낼 수는 없다.
다만 현지 가서 보니 적어도 이 일대서 갈석이라 부를 만한 데는 이곳 말고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조조가 올라 창해 푸른바다를 조망했다지만
푸른바다가 저 멀리 있기는 했지만 쉬 눈에 들어오지는 않아 의문이 남는다.
물론 당시 해안선과 지금 해안선이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그 정상에 오르는 길목에 버틴 해탈령解脫領이라는 데라
우리네 흔한 말로 하면 깔딱고개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 나름 고비가 되는 구간이라 해서
여기를 지나야 해탈의 경지에 오른다 해서 저리 이름했을 것이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한테 뭐라도 팔아 풀칠이라도 하겠다며
할매 한 분이 팔것을 등걸에 담아 힘겹게 오르는 모습이 애처로운 기억으로 남았다.
조조는 동쪽 오랑캐 동호東胡던가? 그 정벌에 나선 길에 갈석산에 올라서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觀滄海관창해 by 조조曹操
東臨碣石 동림갈석
以觀滄海 이관창해
水何澹澹 수하담담
山島竦峙 산도송치
樹木叢生 수목총생
百草豊茂 백초풍무
秋風蕭瑟 추풍소슬
洪波湧起 홍파용기
日月之出 일월지출
若出其中 약출기중
星漢燦爛 성한찬란
若出其裏 약출기리
幸甚至哉 행심지재
可以詠志 가이영지
푸른 바다 조망하며
동쪽 가다 갈석산 올라
푸른 바다 바라보네
파도 출렁출렁 일고
산과 섬 우뚝 솟았네
나무는 빽빽이 자랐고
온갖 풀과 꽃 만발하네
가을 바람 소슬히 불고
큰 파도 용솟음한네
해와 달도 떠오르기를
저 안에서 나오는 듯
은하수 환희 빛나기를
그 속에서 나오는 듯
다행스럽기 그지없어라
노래로 뜻 읊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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