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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obudur, central java, indonesia
march 1st, 2013
이 보도부두르는 내가 명색이 문화재업계에 투신한 지 이미 당시에도 오래였지만, 좀체 연이 없었으니
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일수록 외려 남들 다 가는 데 가기가 여간 어렵지 아니해서
주변 지인들을 봐도 다 그렇다.
외려 저런 명승을 다 싸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엉뚱해서
같은 기자라 해도 농땡이 치는 놈들일수록 더 좋은 데는 더 많이 싸돌아다니는 기현상이 벌어지거니와
꼭 이런 말 하니 내가 꼭 그렇다 하는 꼴이라 못내 조금 뒷골이 뻐근하기는 하다만
그래 솔까 나는 한때 일에 미쳐 살았고, 그 일이 좋아 열광하며 살았다.
암튼 저 보로부두르 자체는 물론이려니와 인도네시아 자체가 나하는테는 저때가 처음이었으니
때는 2013년 2월 말,
충남 당진 땅에서 고생 직살나게 하는 학예연구사 고대영 불알 붙잡아 그쪽 당진시청 지원으로 간 데가 인도네시아였으니
당시 마침 당진은 줄다리기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만들겠다 난리칠 무렵이라.
그거 하나 만들어보겠다고 이곳저곳 연줄 닿는 기관과 더불어 자카르타에서 조촐한 자리를 마련했거니와
그 정보를 입수하고선 내가 고대영한테 부탁하기를 "응아 자칼타 못가 봤다. 나 반둥 화산에 올라 계란도 꾸 묵고 싶고 보로부두르가 글케 좋다는데 응아 한 번 갔음 한다" 했거니와
이런 일을 보고했는지 다행히 그쪽에서 오케이 사인이 나서 쫄래쫄래 대영이 엉덩이만 보고 인도네시아를 갔더랬다.
당시 회의는 타만미니라는 우리로 치면 민속촌 비스무리한 데서 있었는데,
이런 회의 솔까 기사거리도 안 되고, 나는 절박성이 없으니, 화장실 갈 때랑 가서 맘이 다르다고, 좀이 쑤시는지라
다시 대영이 꼬드기기를 "야 지어바 죽겠다. 우리 온 김에 보도부두르 가자" 했으니
내가 당시까지만 해도 혼자 여행할 수는 없는 깡통이라 대영이더러 같이 가자 졸랐으니,
문제는 대영이도 가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실무자가 어딜 간단 말인가?
더구나 담당 과장, 그리고 관련 단체 할배들까지 다 바리바리 와 있는 마당에 실무자가 빠져나갈 수는 없는 법이라
이런 고충을 토로하면서 "지두 가고 싶어유, 지가 명색이 충남대 동양사학과 출신이래유. 지도 왜 안 가고 싶겠슈?" 하는 것 아닌가?
할 수 없이 내가 담당 과장, 그리고 단체 어른들 설득에 나섰다.
블라블라 애 고생하는데 하루만 바람 좀 쐬게 해주소서 하니 마침내 지금은 퇴직한 담당 과장님이 오케이 사인을 놔서 가게 되었으니
당시 한국에서는 박상미 한국외대 교수가 주도적으로 저 회의에서 발표를 했으니, 지금은 파리 주재 주유네스코한국대사로 있을 것이다.
그리해서 자카르타에서 족자카르타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가는데,
그리 눈치 보던 대영이가 회의장을 빠져나오니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라,
그래 그 옛날에는 해외 출장에는 하루씩 농땡이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거니와 이런 미풍양속도 사라졌으니
암튼 저 때 나도, 대영이도 난생 처음 말로만 듣던 보루부두르라는 데를 갔으니, 그 장대함이 놀랍기만 했다.
늦바람에 용마름이 벗겨지는 법이다.
직후 다시 저곳을 거푸 가게 되었으니 암튼 한 번 가고 나면 자신감이 붙는 법이라
그러고 보니 저곳 안 간지 오래라,
이젠 유럽살이 지긋지긋하니 이제는 동남아 이내로 폭을 좁혀 잠깐씩 다녀오는 해외행을 감행하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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