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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문화재기자 17년] (19) 한국언론은 거지다 (1) 회사 출장은 단 한 번도 없었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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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독일 본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누워서 침 뱉기는 하지 말자 다짐하건만 이 얘긴 해야겠다.

문화재가 우리 사회 전반에서, 그리고 범위를 더욱 좁혀 언론계에 국한할 때도 덩치 혹은 중요성이 작은 탓도 있겠지만,

나는 저 17년간 문화재 기자 생활에서 회사가 지원하는 해외 취재는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기억한다.

예서 지원이란 그에 소요하는 재정 전반을 회사 자체 예산으로 부담한다는 뜻으로 사용하기로 한다.  

문화재가 아무리 덜 떨어져도 그렇지 저 기간에 그 분야에서 어찌 세간의 관심을 받는 일이 더러 없으리오?

그럼에도 그런 일에도 도무지 회사는 취재 지원을 하지 않는다.

이런 행태는 연합이건 여타 언론이건 마찬가지로 알거니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아예 자체 지원할 엄두도 내지 않는다.

설혹 관련 부서나 담당 기자가 회사에 취재 신청을 한다 해도 받아들일 리 만무하니, 아예 할 꿈도 꾸지 않는다.

그러니 피치 못하게 해외 취재를 해야 할 때는 또 피치 못하게 외부 지원을 받아내야 한다.

이런 일을 언론계 내부에서는 스폰 받는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스폰서를 알아서 기자가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일이 기자에 의한 부탁으로 이뤄지기도 하고 때론 저쪽에서 필요에 따라 언론사에 요청해 성사되기도 한다.

문화재 업계에서도 잦은 스폰으로 구설에 오른 친구가 있었다고 기억한다.

혹자는 말하리라. 기자가 자기 돈, 자기 월급 내서 해외 취재 가면 안 되느냐고.

하지만 이는 사적 활동이라 공적 활동과는 사뭇 달라 그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에 따른 외국 행은 공적 출장이 성립할 수 없으며, 사적으로 휴가를 내서 가는 여행에 지나지 않는다.

한데 사적 여행이라 해도 그에서 소위 보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만나면 기자는 거개 귀국해서 기사화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더러 그러했다고 기억하며 다른 회사 동료기자들도 비슷한 모습을 자주 봤다.

 

그 시끄럽던 일본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당시, 그 현장 독일 본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기자는 내가 유일했다.



도무지 문화재 관련 일은 회사가 자체 취재 지원을 하는 일이 없음에도 대통령 해외순방은 아주 달라 요란하기가 워낭 소리 같다.

그 순방이라는 일, 속내 뜯어보면 허울만 거창하고 실속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실제 순방 기간 대통령이 하는 일이라곤 미리 짠 각본에 따라 악수하고 도장 찍고 기념식 하는 일이 전부다.

그럼에도 이런 순방 때면 많은 언론사가 자체 비용을 대서 해외 취재를 지원하며 그러는 언론사와 그렇지 못하는 언론사 사이에는 간극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에서 혹 탈락하기라도 하면 마치 언론 취급을 못받는양 통용되기도 한다.

옛날에 이런 대통령 순방 때도 청와대에서 관련 제방 비용 부담을 비롯한 취재 일체를 지원했다고 알지만 언론 환경이 급변한 지금은 그런 일은 아득한 선캄브리아 시대 구습으로 사라졌다.

스폰 없이 해외 취재 혹은 기획 취재가 불가능한 한국언론을 나는 거지라 부른다.

이 거지 근성, 혹은 거지 행태를 벗어버리지 않는 한 언론은 영원히 돈과 권력에 예속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힘은 돈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내가 바보는 아니다.

외부에서야 언론을 향해 정의의 사도가 되라고 외치지만 언론사 역시 손가락만 빨 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 자체 엄연히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감히 나는 스폰서에서 자유로운 그날이 대한민국 언론의 독립 쟁취일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스폰서 검사가 화제가 된 적 있다.

이를 언론은 질타했지만 그건 한국 언론의 자화상에 지나지 않는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비웃는 일이다.

비근한 사례로 나로선 문화재 기자로서의 일선 취재 마지막인 지난해 여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취재를 들고자 한다.

독일 본에서 열린 이 회의가 오죽이나 시끄러웠던가?

우리의 백제역사유적지구 등재 건도 걸려있었지만 그보다 일본이 등재 신청한 이른바 메이지시대 산업혁명 유산군을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말이 오갔는가?

한국과 일본 정부가 대놓고 삿대질을 펼치며 싸웠고, 더구나 그런 사태 전개에서 양국 언론은 또 어떠한 대리전을 펼쳤던가?

이 중요한 회의에도 연합은 현지 취재를 보내줄 생각이 도무지 없었다.

나는 실로 우연치 않은 기회에 이른바 외부 지원이라는 스폰이 자발적으로 와서 어쩌면 기적적으로 저 자리를 참관할 수 있었다.

차라리 가지 않았으면 속은 편했으리라. 이 비화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당시 본 현지에서 내가 여러 번 페이스북 같은 SNS로 전했듯이 한국 언론 중엔 오직 나 혼자만 있었다.

반면 일본 언론에선 줄잡아 백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내가 알기로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정부를 비롯한 외부 지원을 받고 온 데는 없다.

모두가 회사 자체 비용으로 왔다.

대회기간 내내 나와 정보를 주고받은 교도통신과 아사히신문 기자는 서울 특파원이었다.

한국 유일의 현지 취재기자 김태식은 그조차 외부 지원으로 참가했다.

그 비애감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회장을 오가는 한국 대표단을 붙잡고 늘어져서 수십 명이 순식간에 에워싼 일본 취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감성, 그것은 비참함이었다.

그 비참함이 지나니 욕이 튀어나왔다.

한국언론은 거지다.

(2016.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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