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지옥을 산 세대한테 어차피 책은 있으나마나 큰 차이가 없다 할 수도 있겠지만
읽고 싶어도 읽을 책이 없는 사람과 그렇지 아니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분명 커다란 격차가 날 수밖에 없으니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듣고 자란 사람과 흑백티비를 안고 산 사람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를 매양 백미터 달리기에 견주었으니 출발선 자체가 달라 저들은 50미터 지점에서 요이땅을 하는데 견주어 나는 150미터 지점으로 밀려난 형국이었다.
자란 터전이 워낙 다르니 내가 스무살이 되었을 때 나는 그 뒤진 20년을 반까이라도 해야 했으니
그 빈 이십년치를 나는 한달 만에 쑤셔박아야 했다.
근대화 수준으로 말하자면 일본과 견주자면 나는 한국이었다.
그만큼 단기간에 온갖 것을 다 쑤셔박아야 했으니 그에 무슨 옥석이 따로 있겠는가?
나는 말하기 편하게 책만 이야기하나 모든 교양 상식이 동년배 중에선 가장 낙후한 사람 축에 속했던 것이다.
쥐뿔 아무것도 없는 놈이 어느날 광활한 데 던져지니 정신을 차리겠는가?
그렇타고 내가 뭐 죽어라 책만 팠느냐 하면 쥐뿔도 없는 주제에 남들 노는 데는 그런 대로 가랭이 찢어지는 판국이었으나 꽁무니는 따라다녔다.
단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구중이 생자하는 삶을 나는 스무살 때부터 노안이 오기 시작한 쉰쯤까지 살았는데
그런 생활 대략 십년을 하니 비로소 내가 몰라서 감내해야 한 열등감이 어느 정도 사라졌으며
이십년이 지나니 나보다 똑똑한 놈 몇 보이지 않게 되고
삼십년이 지나니 단군 이래 이런 사람 없으나 오직 이런 인재가 미국이나 영국 땅에 태어나지 못했음을 한탄하기에 이르렀다.
나처럼 자란 사람들은 한국이란 나라가 지난 백년을 온축한 딱 그 경험이 그대로 착종한다.
내가 나고 자란 환경은 1960년대라 하지만 실상은 19세기 말 구한말이며
그런 구한말 세대가 뒤늦게 개화를 알고선 식민치하 지나 한국전쟁 거치고 보릿고개 지나며 새마을운동과 사방공사 월남전 파병과 파독광부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곧 국제시장 아니겠는가?
이젠 지쳐서 더는 나갈 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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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어도 읽을 책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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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어도 읽을 책이 없었다
나는 어릴 적 공부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고, 그 동네 그 학교에서 공부를 특출나게 잘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골 산촌 깡촌에 무슨 공부? 학교 다녀오면 소 먹이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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