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 공부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고, 그 동네 그 학교에서 공부를 특출나게 잘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골 산촌 깡촌에 무슨 공부?
학교 다녀오면 소 먹이러 가야 했고 쇠죽 끓어야 했으며, 볼 만한 책도 동아전과 말고는 없었으니 국민학교는 그런 나날들이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공부해서 그럴 듯한 학교, 특히 대학으로 진학한 사람도 가뭄 속에 난 콩과 같아 전연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 동네서 그 시절에 그래도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간다는 경북대 간 사람도 내 기억에는 없다.
혹 내 기억이 잘못일 수 있는데 연세대가 우리 동네는 물론이고 내 고향 대덕면을 통털어서 내가 1호였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 나는 만년 이등이었고 일등하는 친구는 훗날 서울대를 갔는데, 지금 한양대 교수를 하는 이 친구가 아마 대덕면 전체를 통털어 서울대 1호였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공부를 못했으면 국민학교 5학년 때인가로 기억하는데
한 학년 쪽수라 해봐도 마흔명이 채되지 아니해서 국민학교 졸업 때 아마 38명인가로 했을 것이로대,
그에서 특히 공부 못하는 놈들만 학교에 남아 벌서게 하는 거기에 내가 포함된 일도 있다.
다만, 그때는 선생이라는 사람들이 다들 또라이인 시절이라, 산수 문제 하나를 내가 불려다가 칠판에 풀다가 못 풀었는데,
성질 더러븐 이 선생이 내가 그 문제 못 푼다고 그 분풀이로 나를 저리 조치했던 것이니, 나는 지금도 이 또라이 선생이 왜 그 지랄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스승?
웃기고 있네. 그래 선생 중에서 진짜 선생님이라 부를 만한 분 왜 없겠느냐만 난 선생다운 선생 별로 만나지를 못했다.
다 왜 그리 선생 중에 또라이가 많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지가 시키는 대로 풀었는데도 틀렸다고 지랄지랄하더니 기어이 나를 방과후에도 붙잡아 두는 폭거를 저질렀다.
암튼 국민학교 때까지 나는 그랬다.
지질이도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질이도 잘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국민학교 졸업 무렵이 되어서 공부라는 것을 조금은 하게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명색 뿐이지만 입학시험 비슷한 것이 있어 그에서 내가 등수 안에 들어 내가 놀란 것이 아니라 나를 아는 사람들이 놀랜 일이 있다.
지금은 김천시와 통합한 당시 금릉군 대덕면에는 모두 5개 국민학교가 있었으니,
면사무소 소재지 관기리에 대덕국민학교가 있어 이른바 대표 국민학교라 할 만 했고, 기타 몇 개 리 단위를 하나씩 묶어 학교가 하나씩 있어
내가 다닌 가례국민학교가 있었고, 무주 쪽으로 넘어가는 연화리 쪽에 연화국민학교, 거창쪽 우두령 넘어가는 무슨 학교더라? 이런 게 있었으니
당시 이미 이농 탈농현상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던 무렵이라, 하나둘씩 학생들이 줄어가는 모습이 보였다고 기억한다.
학교 규모를 보면 한 학년 기준 대덕국민학교가 2개인가 3개 반인가 되어 가장 컸고, 나머지 학교는 학생숫자라 해봐야 마흔명 이내였다.
이들을 모조리 수용한 데가 대덕중학교였으니, 아마 이 글을 보는 동창생들이 교정해줄 수도 있겠는데, 대략 150명 정도가 입학했다고 기억한다.
지금은 대덕중학교가 뭐 이상하게 변했더만, 면 전체를 통털어 아이가 없어 초등학교는 폐교 수순으로 가지 않나 모르겠다.
이 150명 안팎인 중학교에서, 그리고 모조리 주업이 농사꾼 아들딸들인 우리가 무슨 공부할 여건이 되었겠는가?
그래도 그때는 막 프로야구가 개막한 무렵이라, 이 야구 바람이 이 촌동네에도 불어 주구장창 우리야 틈만 나면 축구랑 야구로 지샜으니 무슨 공부?
그래도 이때서야 비로소 공부하는 재미가 좀 생겨 공부라는 데 취미를 붙였으니, 면 단위라 해서 사정이 좋을 것도 하나도 없어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책이 있어야지?
볼 책도 없었고
그러다가 이건 몇 번 말했지만, 이웃집 누나집에 세계문학전집 한 질이 있어 그거 하나 정신없이 읽어댔으니
지금 생각하면 하도 읽을 책이 없으니 그걸 뽀갰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되겠으며
나아가 그때 일찍이 집나간 형님이 누나들 보라며 어디 길거리에서 파는 전질 한 종을 집으로 가져왔으니 그것이 이선근 한국사 시리즈였다.
이 한국사 시리즈가 연표까지 내 기억에 대략 12권인가 그럴 텐데 그 시커먼 하드커버 책을 12권을 나는 몇 번이나 숙독 통독했는지 모른다.
왜?
읽을 책이 있어야지?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서울 구경을 했는데, 그때 부천 원미동 누나 집 근처 책방을 갔다가 500원짜리인가 하는 책을 하나 사서 이것 역시 꺼풀이 떨어질 정도로 반복 통독했으니
그것이 보카치오 데카메론이었다. 지금 보니 해적판 아니었던가 싶지만 그게 중요했겠는가?
이 역시 두어 번 이야기했지만 그 원래 저자 이름이 복카쵸로 되어 있어 나는 이 사람이 내가 세계사 시간 르네상스에서 배운 그 보카치오인가 아닌가 한동안 의문을 품기도 한 시절이다.
그런 삶을 살며 예까지 왔다.
한데 어쩌다 이 이야기가 나왔지?
암튼 그랬다.
이에서 초래하는 문제는 다음 호에서 다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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