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페이스북 계정을 훑다 이화여대 장남원 선생이 최근 읽고 있는 책이라며 몇 종 엎은 사진을 탑재하고서는
요새는 부러 책을 읽고자 먼 길은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차를 이용하는 길에도 때론 주차하고 잠시 차 안에 남아 창문을 열고 시원힌 바람을 쐬며 한 챕터를 읽기도 한다 했거니와
저런 말들에서 스마트폰시대의 글쓰기 새로운 방향을 나는 본다.
이것도 아마 나는 일시하는 현상이라 보는데,
한강이라는 친구가 그렇게도 꿈에도 원하던 노벨문학상을 타주는 바람에 그의 작품을 중심으로 하는 독서광풍이 일거니와,
나는 언제나 말하듯이 문자시대가 저문 것이 아니라 독서하는 패턴이 변했을 뿐이며,
독서량은 단군조선이래 지금이 최고 활황기라 본다.
그러면서 매양 신문과 비교하거니와, 망한 것은 인쇄신문이지, 그것이 대표하는 뉴스가 아니라는 점을 하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뉴스...내가 중고교 시절엔 나는 뉴스라는 것을 소비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는 변해서 지금은 초동급부까지 뉴스를 소비한다.
초등학생도 오늘 소식 들으니 김수미 선생이 돌아가셨다 하는데, 그 소식 안다.
이걸 보면 뉴스시장이 얼마나 폭이 넓어졌는지 알기는 충분하리라 본다.
독서 역시 마찬가지라, 오프라인 책이 망한 것이지, 독서량 전체를 보면 그 어느 때보다 폭이 넓어졌다고 본다.
그에 맞추어 글쓰기 양태도 변해야 한다고 본다.
나처럼 생평 기사는 천자 이내라는 훈련을 받은 기자나부랭이 출신이라 상대적으로 이 새로운 시대에 특화했다 할 수 있지만,
논문 쓰기에 익숙한 다른 글쓰기 직업군 양태를 보면 장과 절이 너무 길어 내가 숨이 턱턱 막히곤 한다.
장과 절은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읽어내려가도록 잘게 분절해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 정신에 맞는 글쓰기 패턴 중 하나라고 본다.
그리고 그 장과 절은 전체로 보면 그 전체와 조화하지만, 그 장과 절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완성해야 한다.
이것이 스마트폰시대에 맞은 글쓰기 한 양태라고 나는 본다.
그만큼 긴 장과 절은 피로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 길이는 내가 아무리 봐도 구 신문 체제에 맞추어 천자 혹은 천이백자를 넘지 않아야 한다.
옛날 신문체제로 보건대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나 만물상 같은 그런 글쓰기가 필요한 시대다.
물론 저런 글들을 지금 읽으면 하나 분통이 터지는 것이 있는데, 출처다.
이규태 선생만 해도 출처를 생략한 글이 열 중 아홉이라, 후학들이 그 출처를 찾는다 몹시도 고생한다.
이런 단점들은 다른 방식으로 극복가능할 것이며, 이런 방법들은 후학들이 고민해야지 않겠는가?
왜 장과 절은 잘게 나누어야 하는가?
유튜브가 대표하는 동영상 시대가 개막하고서 시청자는 그 광고에 짜증을 냈다.
그 광고를 보면서 나는 조만간 5초짜리 광고가 나오겠다는 말을 했다. 실제 얼마 안 가서 5초짜리 광고가 지금은 일반화했다.
한데 지금은?
저 5초도 길다 느끼는 시대다.
이를 보면 글쓰기 또한 이제는 읽는 시대가 아닌 보는 시대로,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과 절은 잘게잘게 나누어야 하며
그 짧은 글 자체가 하나의 완성한 이야기여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이솝우화 시대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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