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간헐로, 그리고 때로는 집중해서 화장실 이야기를 한다. 어린 시절 짚으로, 새끼줄로 뒤딱이를 해결하고, 통시가 대표하는 그런 열악한 화장실 문화를 겪어 지금 수세식 화장실 시대에 이른 내가 이런 점들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생충으로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거니와, 그 기생충 감염 통로는 누구나 예상하는 그런 것들이라, 그 대표하는 통로가 실은 인분이라는 비료에서 말미암았다.
내 고향 김천을 기준으로만 해도, 지금과 같은 수세식 변도를 도입한 시대는 오래지 않아서 때마다 그 반동에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단순히 이런 시절 기억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곧 위생 문제요, 그것이 곧 사회문제인 까닭에 더욱 저 화장실 문화는 내가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둔다.
로마시대 공중 화장실 문화를 증언하는 유적을 자주 소개하지만 저것도 좀 더 파고 들면 저 시대 수세식을 겸한 듯해서 훨씬 사정이 나은 듯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어서, 지금 봐서는 그런대로 위생 상태가 좋은 듯이 보이지만 저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을 보면 그 특유한 케케한 문화를 한탄하는 기록도 적지 않다.
수돗물을 흘려 보내서 씻어내린다 하지만 솔까 똥덩어리가 그리 쉽게 휩쓸려가겠는가? 저들도 저것이 문제라 해서 열려 있는 듯하지만 가둔 공간에 배치한 이유가 왜 없겠는가?
강물로, 바다로 흘려보내는 구조였으니 이에 따른 부양화가 심각했을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오죽하면 물난리 한 번 날 때마다 청계천이 범람한 조선시대 한양은 그때마다 똥바다였겠는가?
이를 이기고자 하는 쟁투는 맹렬했으니, 재를 뿌린다 톱밥을 뿌린다 난리를 피워댔다. 그런 대로 성공한 데가 실은 해우소라 일컫는 절간 화장실이었으니 이 해우소는 특징이 일단 쏘는 지점과 낙하 착지하는 지점이 낙차가 크다는 데 있으니 이는 반동과 그에 따른 궁뎅이 반격을 막기 위함이었다.
나아가 그 아래로는 밖으로 통하는 공간을 텄으니, 이를 통해 냄새를 자연 배설하고 나아가 자연 건조시간을 늘림으로써 ㄱ굳은 상태로의 인분화를 획책한 까닭이다.
그것이 초래하는 각종 사회현상이야 기생충 연구로 대표하는 의학계 성과가 눈이 부시거니와, 그뿐이랴? 전염병도 그에 말미암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군대 동원과 대규모 노동력 징발은 실은 거대한 똥덩어리와의 싸움이었다.
이제는 역사문화를 똥을 주체로 내세우는 과감한 시대가 와야 한다고 본다.
나는 그 목소리를 주창하는 작은 모기 울음이 지나지 않으나, 훗날 진짜로 똥전문가가 출현할 날이 머지는 않았다고 본다.
찬송하자 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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