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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사진이 담은 근대기 한국풍경들

by taeshik.kim 2024.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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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_사진자료_국문 (1)-복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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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새삼스러울 건 없는 장면들이지만, 그런 대로 저 시대를 증언하는 또 다른 장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출일까? 자연스런 장면 포착일까? 이 점이 문제가 된다. 저때 연출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어제 12일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근대기 한국풍경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공개했거니와

이번 조사 바탕은 2021년과 2022년에 걸쳐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사업이라 한다.

그 성과는 보고서 형태 책자 발간과 더불어 국외재단을 통한 웹서비스(http://www.overseaschf.or.kr/archive) 가 이뤄진다 하니 이를 통한 접근이 있으면 되겠다.

이 상트 오틸리엔수도원과 한국의 인연은 널리 알려졌으니 이번 자료들은 1909년 이래 한국에 파견된 성 베네딕도회 소속 선교사들이 촬영한 것들이라 한다.
 

당시 서구 눈에 이런 옹기장이가 유별나게 보인 것은 확실하다. 무엇이 그들을 매료했을까?

 
개중 1911년 한국을 방문한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 1870-1956) 총아빠스는 당시 최신 사진 촬영 기술인 ‘오토크롬(Autochrom)’을 사용하여 천연색 사진을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있다 한다.

오토크롬이란 1903년 특허를 받아 1907년 상용화한 기술이다.

유리판을 지지체로 사용하는 천연색 투명 사진으로 컬러 필름이 출시된 1932년 이전까지 주로 활용된 초기 천연 사진 기술이다.

당시 베버는 “여러모로 운이 따른 덕에 소멸할 운명에 처한 문화사적 보물들의 마지막 모습을 생생히 포착할 수 있었으며 이것들의 가치는 뜻있는 독자들과 다음 세대가 판단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그 기록 의도를 엿보게 된다.
 

당시 그들이 볼 때 이런 복장 이런 폼새가 원시를 품은 인간사회로 간주됐음을 본다. 저와 같은 자세가 낳은 괴물이 파리 께브랑리다.

 
그 사진들에는 선교사들이 운영한 초기 학교 교육 장면, 근대 성당 건축 초창기 모습, 성곽과 사찰, 한복을 입은 당시 한국인들 장면이 있다. 

조사 대상은 유리건판, 랜턴 슬라이드 및 셀룰로이드 필름 등 총 2천77점 중 한국과 관련 없는 사진을 제외한 1천874점을 선별해 보고서에 수록하는 한편 개중 118점은 주제별로 분류하여 도판과 해설을 넣어 상세하게 소개했다 하는데,

우리랑 관계 없다 해서 뺐다고? 내 그 노력은 존경하나 이딴 국뽕 정신 버려야 한다. 
 

할머니와 손주. 이건 분명 연출이다. 사진 찍는다고 한복 입혔다.
명동성당 설교단. 카니시오 퀴겔겐(1915), 유리건판(음화). 이 강론대는 베네딕도회가 설립한 숭공학교 학생들이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Gustave Charles Marie Mutel, 1854-1933) 주교 서품 25주년 기념선물로 제작했다. 현재 천개는 제대 왼쪽 기둥으로 옮겨졌고, 강대는 명동성당 제대와 혜화동성당 독서대로 쓰이고 있으며, 오름계단은 왜관수도원에 소장되어 있다.
카메라에 유리건판을 끼우는 베버 총아빠스. 촬영자 미상(1925), 필름(음화). 베버 총아빠스가 카메라에 유리건판을 갈아 끼우는 모습을 안셀로 로머(Anselm Romer, 1885-1951) 신부가 바라본다. 뒤에는 삼각대가 있다.
북한산성 산영루. 촬영자 미상(1911), 유리건판(음화). 북한산성 산영루를 배경으로 베버 총아빠스 일행을 촬영한 사진이다. 1925년 을축대홍수로 유실 되어 주춧돌만 남아있었으나 2014년 고양시가 복원했다.
석남사 대웅전 내부. 1911
숭공학교 목공부 단체사진. 촬영자 미상(연도 미상), 유리건판(음화). ※ 베네딕도회는 1910년 9월 실업학교인 숭공학교(崇工學校)를 설립하여 1921년 폐교될 때까지 465명의 유능한 장인들을 배출하였다. 학생들은 4년 동안 기능과 교양과목을 이수하고 이론과 실기시험을 치른 후 자격증을 받았다. 이 자료는 중요하다.
빌렘 신부와 안중근의 형제들. 촬영자 미상(연도 미상), 유리건판(양화). 빌렘 신부와 안중근 형제들이 사진관에서 촬영한 사진. 앉아있는 사람이 안정근(치릴로 1885-1949), 그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안공근(요한 1889-?).
해주 신광사 오층석탑. 노르베르트 베버(1911), 오토크롬. 베버의 저서에 1911년 5월 14일 해주 신광사를 방문한 기록이 있다.
헤화문. 보통 이랬다. 성곽 밑으로 무허가 초가가 밀집했다. 1911년
청계동에서 열린 환등기 시사회. 카시아노 니바우어(1911), 유리건판. 베버 총아빠스 일행과 그들의 청계동 방문을 환영하러 나온 신자들. 왼쪽부터 베버 총아빠스, 플라치도 포겔(Plazidus Vogel) 원장 신부, 그리고 빌렘(Nicolas Joseph Marie Wilhelm, 1860-1938) 신부. 모여든 사람들이 놀라운 표정으로 환등기를 통해 보이는 이미지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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