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240)
조촐한 음주[小酌]
[宋] 공평중(孔平仲) / 김영문 選譯評
군위 인각사
해지니 산성에
저녁 오는데
누런 구름 금방
눈발 쏟을 듯
이러매 더더욱
술 독 하나 열어
자주 취하며
남은 겨울 보내야지
落日山城晚, 黃雲雪意濃. 更須開一甕, 頻醉送殘冬.
애주가들에게는 모든 게 음주 모티브다. 삼라만상, 희로애락, 인생만사, 사시사철이 전부 술 마실 핑계로 작용한다. 젊은 시절 제법 주당인양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닐 때 이렇게 호언장담하곤 했다.
술에는 네 단계가 있다. 첫째, 청탁불문(淸濁不問)으로 소주든 막걸리든 가리지 않는다. 둘째, 안주불문(按酒不問)으로 안주가 있든 없는 술을 마신다. 셋째, 원근불문(遠近不問)으로 술집이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어디든 가서 술을 즐긴다. 넷째, 생사불문(生死不問)으로 죽든 살든 술에 빠져 산다. 생사불문이 바로 조지훈의 주도유단(酒道有段)의 마지막 단계인 열반주의 경지다.
나도 한때 술께나 즐기는 축에 든다고 자부하곤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 술을 두려워하는[畏酒]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인각사에서
주선(酒仙) 이태백은 「월하독작(月下獨酌)」 둘째 시에서 “청주는 성인에 비견한다고 들었거니와, 탁주는 현인과 같다고 말을 한다네(已聞淸比聖, 復道濁如賢)”라고 읊었다. 청탁불문의 경지를 이처럼 고상한 한시로 표현해놓았으니 어찌 술이 땡기지 않겠는가?
모름지기 성현이 되기 위해서는 소주와 막걸리를 부지런히 마실 일이다. 게다가 눈이 쏟아지려는 저녁 무렵 긴긴 겨울 끝이 아직 음산한 추위를 드리우고 있는 시절이라면 응당 독한 술 한 잔으로 겨우내 차가워진 심신을 따뜻하게 녹여야 한다.
봄은 아직 멀리 있으니 느긋한 마음으로 천천히 술잔을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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