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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강원도 영월이 토해낸 금동반가사유상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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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강원도 영월에 있던 흥녕선원(興寧禪院)이라는 옛절 자리에서 아마도 7~8세기 무렵 신라시대에 제작됐을 법한 금동반가사유상 1점이 출토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재단법인 강원문화재연구소(소장 오제환)는 지난해 11월 8일 이래 강원도가 지원한 흥녕선원지 발굴조사 중간 단계에서 높이 약 15㎝, 폭 약 5㎝인 금동반가사유상을 수습했다면서 "발굴조사를 통해 금동반가사유상이 출토되기는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출처가 분명한 금동반가사유상으로도 유일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절터 내부 건물터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 불상은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미륵보살이 반가부좌(半跏趺坐) 형태로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에 걸치고 오른 무릎 위에 올린 오른팔로 턱을 괴고 명상에 잠긴 모습을 표현했다. 얼굴은 원형에 가깝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상태다. 상의는 걸치지 않았으며, 머리에는 삼면이 돌출된 삼산관(三山冠)을 썼다는 점에서 부처가 아니라 보살을 표현했다. 


관건은 이 불상을 만든 시기가 언제냐는 것. 통상 이런 양식을 대표하는 반가사유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인 국보 78호와 국보 83호를 보통 7세기 삼국시대 제작으로 본다는 점에서 언뜻 그 양식과 계통을 같이하는 듯이 보이는 이번 불상 역시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측면>


이 경우 흥녕선원이 등장 혹은 번창한 시기와 맞지 않는 문제점을 노출한다. 7세기 무렵으로 본다면, 흥녕선원이 등장하기도 전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 해도, 이 불상은 휴대용 소형이라는 점에서 그 전에 만들어져 유통되다가 무슨 이유로 흥녕선원에 묻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이 불상 자체는 신라말기 무렵에 제작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들은 관계 분야 전문가들의 검토와 토론을 거쳐야 어느 정도 해명할 전망이다. 


조사단은 금동반가사유상은 향후 보존처리를 유물의 주조기법과 도금방법 등을 정밀히 분석할 계획이다.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법흥리 386번지 일원에 소재하는 흥녕선원터는 2002년 이후 2004년까지 두 차례 걸친 시굴조사를 통해 건물지와 석축, 보도시설 등의 다양한 유구(遺構)와 유물이 확인됐다. 이번 조사는 이를 토대로 한 본발굴이다. 


중기 신라시대 고승인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하는 흥녕선원은 신라말 9개 선종 산문을 뭉뚱그린 소위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사자산문파 본거지로, 통일신라 말기 징효대사(826~900)가 등장하면서 크게 번성했다. 징효대사 탑비(보물 제612호)와 그의 부도(浮屠,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탑)는 지금은 법흥사 경내에 있다. 사자산파(獅子山派)는 850년 쌍봉(雙峰) 도윤(道允) 국사가 개산했다. 


<측면>


A gilt bronze pensive Maitreya has been excavated at the site of Heungnyeongseonwon Temple in Yeongwol County, Gangwondo Province. The sculpture is 15㎝ high, 5㎝ 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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