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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과 함께하는 paleopathology

개간, 산림파괴, 말라리아 (6)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에필로그 1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15세기부터 한반도는 새로운 농경지를 찾아 개간을 시작했다. 


개간은 처음에는 무너미 일대에 물을 대어 논으로 바꾸는 형태로 시작했지만 이것도 16세기에 들어 거의 개간이 완료되자 이번에는 사람들은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꼭대기까지 불을 놓고 논밭을 일구어 19세기 초반이 되면 평지의 농경지와 산의 농경지가 거의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농경지로 바뀌고 산에는 나무 하나 없는 터무니 없는 상태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여기다 기왕에 존재하던 밭까지 새로 논으로 바꾸는 활동이 시작되면서 전체 경작지에서 논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높아졌다. 


몇백년간에 걸친 이런 조선 농촌 변화의 충격파는 16~19세기 영국 농촌사회 모습을 일변시킨 엔클로져 운동 (Enclosure movement)의 그것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였는지도 모른다. 그 후과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16세기 이후 엔클로져 운동. 일거에 영국 사회를 바꾸었다. 


에필로그 2


이전 토양매개성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우리나라에서 회충, 편충 등 감염률이 극히 높았던 이면에는 인분을 거름으로 쓰는 풍토가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경우 인분 거름을 대체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나오지 않는 한 토양매개성 기생충 감염률은 낮출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었다. 



60년대 충주비료공장. 비료를 자급자족한다는 것은 단순히 농업혁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더이상 인분비료가 필요 없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농업생산과 단단히 결합되어 있던 토양매개성 기생충 감염의 사슬이 풀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라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수 있다


15세기 이후 일어난 이러한 조선사회 농촌의 거대한 변화가 더 많은 인구를 보다 효율적으로 먹여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이상 (이것은 인분 거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움직임 자체를 우리는 비난 할 수는 없다. 


당시 나라 전체에 막대한 면적의 논이 새로 만들어지고 산꼭대기까지 농사를 짓기 시작하게 되는 한 아마 웅덩이를 메우고 늪을 배수하는 정도로는 모기 수는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화학비료가 회충, 편충을 몰아냈듯이 더욱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모기 숫자도 줄지 않고 말라리아 감염률도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말라리아가 발생했을 때 금계랍이라는 특효약으로 환자를 되도록 빨리 치료하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이다. 일제시대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비료공장이 회충, 편충을 몰아내는데 큰 공을 세운것 처럼-. 


20세기 후반 들어 남한에 산에 숲이 가득 들어서게 된 것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산림자원을 공급하며 홍수와 가뭄을 방제한다는 이점 외에도 말라리아 감염이 줄어드는데도 간접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에필로그 3


우리나라 조선시대 회충, 편충, 그리고 말라리아에 관한 한 그 높은 감염률의 이면에는 단순한 위생상의 문제 외에 막대한 인구를 보다 효율적으로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고도의 집약적 농경이 배후에 있다는 의심을 한다. 


우리는 조선왕국이 성공적으로 근대화하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 한 것 때문에 당시 우리 조상들이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노력조차도 아예 부재했을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게으른 탓에 망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지런함이야 말로 그런 상황을 타개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길로 본다. 


하지만 위 지도를 보자. 


이 지도는 현재 쌀이 생산되는 지역을 표시한 세계지도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쌀 농사가 유독 우리나라 주변 지역에서 높은 위도로 북상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쌀 농사가 이렇게 고위도로 북상한 이면에는 한반도와 중국 동북 삼성 지역 쌀농사 보급에 큰 기여를 한 조선인의 노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안다. 특히 조중 국경을 넘어 청의 봉금지대로 숨어들어 농사를 지었던 조선 사람들-. 


아래 기사를 보면 동북삼성을 개간하고 논농사를 짓기 시작하는 조선인 이주자의 모습이 18세기까지 한반도 안의 모습과 판박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족 ‘동북삼성’의 모내기철 풍광을 좇아서http://kor.theasian.asia/archives/188479


이들이 왜 이렇게 목숨을 걸고라도 새로운 농사 지을 땅을 찾아 간도 지역으로 흘러들어갔던가-. 어찌 보면 그들의 동기는 15-19세기에 보이는 땅이라면 빈틈없이 농지로 바꾸어 놓았던 당시 한반도 상황에 대한 숙고 없이는 이해 불능일지도 모르겠다. 



목숨을 걸고 간도로 이주한 조선인은 한반도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황무지를 개간하고 벼를 심었다. 



에필로그 4


요는 한반도가 부지런하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전 세계에는 농사를 한해에 쌀 이모작, 심지어는 삼모작을 하는 나라도 많다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척박한 조건에서 문명을 일구기 위해 죽을 노력을 다했는가를 깨닫게 된다. 한 해 밀 2모작은 별 노력 없이도 달성한다는 인도의 농경지 풍경. 


한반도 안에서 무지하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죽어라고 농사를 짓고 또 짓고 산까지 깎아 가면서 개간하고 숲에 불지르고 개울마다 이를 막아 보를 건설하고 수리시설을 늘려가면서 농사를 지어갈 때 그들이 도달했던 종점은 과연 어디일까. 


그들이 도달한 곳은 유토피아였을까. 


조선시대. 한성 부근.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도달한 종점이 유토피아가 아니고 반대로 농업파탄, 기근과 참화, 생태환경 조건의 총제적 붕괴였다면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온것일까. 부지런함이 현실에서는 우리를 배신한 것일까. 



북한의 산림. 이 모습은 정확히 말하면 조선왕국 멸망 직전의 상황과 비교할 때 이리 된 이유와 결과가 거의 방불한 상황이라고 본다. 


나는 조선왕국이 19세기 초반 도달했던 개간과 화전, 고도의 집약농경의 종말을 21세기 초반, 북한의 모습에서 다시 본다. 



산까지 밀어 다락밭을 조성하고 고도의 밀식 재배를 주장하여 농업파탄을 초래한 북한의 "주체농법"은 근본적으로 조선왕조 말년의 농업생산-개간, 화전-과 일란성 쌍둥이이다. 이미 한차례 조선왕국에서 실패했던 이러한 정책이 한번 더 20세기에 한반도 북부에서 새로운 구호하에 시도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조선왕조 실패의 원인에 대해 아직도 냉정한 분석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왜 망했는지 모른다는 것은 곧 그 파탄이 다시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다락밭. 한톨이라도 더 식량을 얻고자 했지만 홍수와 산사태라는 생태 환경의 완벽한 붕괴를 불렀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조선시대 화전개간의 쌍생아이다. 북한의 기근과 경제파탄은 게으름과 사회주의 경제라는 단순한 원인 이상의 측면이 배후에 있다. 



이 모습을 단순히 외세 때문에, 혹은 그들이 일하지 않고 게을러서, 아니면 또 다른 어떤 불가지한 이유 때문이라고 인식하면서 왜 조선왕국과 북한이 종국에는 그렇게 지친 모습으로 전국토가 헐벗고 나무가 완전히 사라지고 처절한 빈곤과 파탄에 최종적으로 몰려야 했던가에 대한 냉정한 고민이 없다면-. 





그래서 그로부터 앞으로 우리가 우리 자손들을 위해 어떻게 국가 생존-발전 전략을 짜내야 하는지 이성적으로 고민하지 않는 다면-. 


아마 세번째로 똑같은 참화가 우리 후손대에 한반도에서 한번 더 일어날 지도 모른다. <完>


P.S.) 내가 쓴 글의 주제가 "산에 나무를 심자"거나 "산림보호"라는 것만으로 오해되지 않기를. 예를 들어 북한이 산림을 무리하게 훼손한 원인이 "식량자급"과 "에너지원 확보"에 있었다면 그 문제가 남한에서 어떻게 해결되었는가가 왜 휴전선 이남에서는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크게 보아 북한 말라리아에 대한 간접적 해결책의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